鏡裏癯容物外身 거울 속 야윈 얼굴은 몸 밖의 사물이고
寒梅影子竹精神 차가운 매화의 그림자는 대나무의 정신이다
逢人不道人間事 사람을 만나도 인간의 일을 말하지 않으니
便是人間無事人 이 곧 세상을 탈 없이 사는 사람이로다

'스스로 너그러우면(自寬)'-김부용당(金芙蓉堂1812- ? 조선 후기 기생)

김부용당의 호는 운초(雲楚), 평안도 성천 출신으로 개성의 황진이, 부안의 매창과 더불어 조선의 3대 명기로 알려져 있으며, '조선역대여류문집'에 한시 329수가 전해 온다.

가난한 선비의 딸로 태어난 김부용당은 숙부에게 당시(唐詩)와 사서삼경을 배웠으나 열 살 때 고아가 되어 기생이 된 후 평안감사 김이양의 소실로 살았다.

사대부를 무색케 한다는 평을 들은 김부용당의 한시는 발랄하고 다채로운데, 위 시에서 보듯 그녀는 인간의 근본을 다룬 성리적인 면에도 관심을 둔 특이한 여인이었다.

더구나 '주객과 시인을 풍자함(諷詩酒客)'을 보면 그녀는 시를 보는 예리한 안목도 갖추고 있었다.

酒過能伐性 詩巧必窮人 詩酒雖爲友 不疎亦不親

술이 지나치면 성품을 해칠 수 있고, 시가 정교하면 반드시 궁핍해지나니. 시와 술을 벗으로 할지언정, 버리기도 어렵고 친하기도 어렵다네.

하지만 '저문 봄날 동문을 나서며(暮春出東門)'는 신분질서가 뚜렷한 시대에 쉰 살이나 나이 차이가 난 김이양의 소실로 산 그녀의 고적감과 슬픔이 베인 서정시이다. 갑질의 횡포가 극심한 시대에 불현듯 종을 해방시켜 자기 며느리로 삼은 동학의 창시자 수운 최제우 선생이 떠오르는 것을 무슨 까닭일까.

日永山深碧草薰 一春歸路杳難分 借問此身何所似 夕陽天末見孤雲

낮은 길고 산이 깊어 푸른 풀 향기로운데, 봄날이 가는 길은 아득하여 분간하기 어렵네요. 묻어봅니다, 이 몸은 무엇과 같아 보여요. 석양에 하늘 끝에 보이는 외로운 구름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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