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숨결 〈정전〉

세상의 광범위한 은혜 네 가지 측면에서 바라본 것
사은 핵심은 감사와 보은에 정성 다하자는데 있어


원불교의 사상을 흔히 은(恩)사상이라고 한다. 진리의 근원에서 살펴보면 원래는 은혜도 없는데 말이다.

물론 해악도 없다. 그 자리에는 선과 악이 나타나기 이전의 무선무악(無善無惡)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은사상이라고 한 것은 나타난 자리에서 본 관점이다. 나타난 면에서는 세상을 악으로 설명해도 틀리지 않을 뿐 아니라 성립이 된다. 그러면 세상을 은혜로 이루어졌다고 하면 진리의 한 면만 드러낸 게 아닌가 하고 아쉬울 법도 하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해악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도 있지만 이런 관점은 해악의 기운을 불러와서 해악에 해악이 결부되어 파멸로 치닫는다. 하지만 은혜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은혜의 상승작용으로 복록의 기운이 찾아든다. 세상을 좀 살아본 사람이라면 비관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왠지 무슨 일이든 잘 풀리지 않는 반면에 늘 긍정과 감사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해도 늘 잘 되어가는 것을 피부에 와닿는 감각으로 알 수 있다.

대종사는 세상을 서로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아주 절박한 은혜의 관계로 바라보았다. 우선 공기, 물, 땅, 부모, 함께하는 사람, 법률 등 가장 필요한 관점에서부터 찾아 들어 갔다.

그런데 세상을 은혜라고 보면 되지 왜 하필이면 사은(四恩)일까? 은혜라고만 하면 너무 광범위하여 더위 잡기 어렵기 때문에, 나타난 진리의 모습인 우주 만물을 네 가지 측면에서 바라본 것이다. 진리의 모습을 네 가지로 설명했다고 진리의 모습을 사은으로만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여기면 이 또한 관념에 사로잡힌 꼴이 되고 만다.

사은은 어디까지나 우주 만물을 바라보는 네 가지 관점이다. 만물을 하나로 여기는데 도움을 주자는 뜻이지 나눠야 하는 필연의 의미가 아니다. 우주 만물을 네 가지로 나누기만 하다 보면 우주 만물을 인식해 가는데 손실이 있기도 하고 또 서로 겹치는 부분도 있게 된다. 그래서 그 손실을 줄이려다 보면 오히려 겹치는 부분이 많아진다. 소태산 대종사의 은혜를 볼 때 사은 가운데 어디에 속할까를 생각해 보자. 우선 동포은이다. 하지만 진리를 알게 해 주었으니 법률은에도 속한다. 뿐만 아니라 마음을 낳아 주었으니 부모은이고 천지의 도를 알게 해 주었으니 천지은에도 포함된다. 이처럼 성자 한 사람을 설명하려고 해도 사은이 함께 어울어져 있다.

사은은 우주 만물을 네 가지로 완벽하게 나눈 개념이 아니다. 그래서 사은을 설명할 때는 반드시 우주의 천지 만물을 입체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려는 마음을 놓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없어서는 살 수 없는 필연의 관계를 알고 보은할 수 있는 마음을 지니는 게 중요하다.

사은을 분석해서 어떻게 개념을 분배하느냐에 초점을 둘 것이 아니라 그 핵심은 감사와 보은에 있음을 알고 마음에 품어서 살아가는 데 정성을 기울이자는 것에 그 의미가 있다.

<성주삼동연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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