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해외교화의 상징적 인물이 빛을 거두었다.

초타원 백상원(初陀圓 白想源) 종사를 떠나 보내며 국내도 국내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해외교무들이 느끼는 슬픔과 존숭의 마음은 가히 다 헤아리기 어렵다. 슬픔과 추모의 물결이 가슴과 가슴으로 전해져 강물이 되고 바다가 되고 있다.

이는 그만큼 초타원 종사가 살아 생전에 원불교 교법 전수와 교화 발전을 위해 자신의 심신을 온통 다 남음없이 불태운 혈심 혈성의 결정체라 생각한다. 그는 감내하기 어려운 그 어떠한 어려움에 처해서도 해맑은 특유의 미소를 잃지 않는 천연성을 온전히 지키는 불보살 성인의 자비와 자태를 지녔었다.

나상호 교무가 정성을 쏟아 집필한 초타원 백상원 교무 평전인 〈리틀 자이언트(작은 거인)〉의 인쇄전 마지막 교정을 본 적이 있다. 참으로 위대한 전무출신, 교무로서 자랑스럽고 당당한 교화자의 빛나는 삶이었다.

선진들이 줄을 지어 열반하는 요즘, 그 어느 선진의 삶이 거룩하지 않을리 없지마는 유독 초타원 백상원 종사의 죽음에 슬픔과 아픔이 큰 것은 그가 자신을 남김없이 불태운 교화자의 삶이면서도 정년퇴임 후에 수양하는 여생의 작은 행복을 갖지 못하고 황망히 우리 곁을 떠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도 자신이 몸바쳐 일해온 미국 현지에서 떠났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순교요 순직의 마침이었다.

열반 소식을 접한 경산 장응철 종법사도 "수화불피 사무여한으로 일생을 일관한 초타원 원정사의 열반에 애석하고 비통한 심정이다."며 "작은 체구에 힘들고 험한 노역을 마다않고 헌신한 무아봉공의 노정은 천신만고 함지사지 그 자체였다."고 추모했다.

작은 용돈이라도 누가 챙겨주면 초타원이 하는 해외교화 불사에 보태었던 스승, 승타원 송영봉 종사도 아끼는 제자를 앞서 보내는 슬픔이 그 얼마이런가. 인생이 어차피 영원할 수 없는 초로(草露)로 같은 존재이지만 가까운 인연, 존경하는 사람을 먼저 보내는 슬픔과 아픔이야 인지상정이 아니겠는가.

보스톤교당 김현오 교무는 추모사에서 "초타원 종사의 급작스런 열반이 신심 장한 교도에게는 더욱 정신 바짝나게 하는 분발의 계기가 되고, 쉬고 있던 교도에게는 재발심의 기연이 될 것이다."고 전했다.

백상원 교무는 그 마음에 계교가 없었고 사량이 없었다. 그의 일상에는 교무라는 상도 정녀라는 그림자도 없었다. 항상 겸손하고 가난하며 무소유와 검박, 정결과 해맑은 미소가 있을 뿐이었다.

원기100년 성업기를 맞은 재가 출가 모두는 소태산 대종사, 정산종사, 대산종사와 같은 역대 종통의 정신을 계승함과 동시에 초타원 백상원 교무처럼 천진무구한 선진의 무아봉공 정신을 이어받아 공부와 교화사업간에 심기일전하는 대분발심을 일으켜 세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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