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걸음 상쾌한 기운 우러나는 듯

105장)'세계조판 이 가운데'(報恩慶祝歌)

대종사 작사 / 김세형 작곡

세계조판 이 가운데 제일주장 누구신가
만물지중 사람이라 사람마다 주장인가.
사람이라 하고 보면 위로 보니 보은이요
알로 보니 배은이라 보은봉공 하여있고,

배은망덕 알고 보면 제일주장 되겠더라
없었더라 없었더라 보은자는 없었더라.
높았더라 높았더라 보은자는 높았더라
악도로다 악도로다 배은자는 악도로다.

▲ 원불교역사박물관 2층에 있는 창립도.

대종사는 대각을 한 후 그 심경을 가사로 읊었는데, 이를 모아 〈법의대전〉이라 이름한다. 이 가운데 '경축가'가 있으며, 〈성가〉 105장인 '세계조판 이 가운데'는 바로 대종사의 가사 경축가의 일부분을 옮긴 것이다.

105장의 부제로 '보은경축가'라 한 것은 경축가에 '보은가나 불러보세' '경축가나 불러보세'라는 표현이 나오고 이를 줄여 '보은경축가'라 한 것이다.

원기35년(1940), 〈회보〉 62호를 보면 '종화록'이란 제목으로 원산 서대원 교무가 경위 및 가사를 실고 있다. 종화록(宗化錄)은 대종사께서 시대를 따라 교화한 뜻의 '소태산 종사주 시화록(時化錄)'의 약칭이다. 경축가는 교단 초기에 기도문 같은 역할을 했으며 일원과 사은의 시원적 표현이 나오는 초기 교리의 소박한 모습을 담고 있다.

대각과 보은

105장은 경축가의 앞부분으로 보은과 배은이 대두되어 있으며 보은하면 높을 일이요 배은하면 악도이니, 배은망덕 없애 보은가나 불러보고 일원대원되어 경축가나 불러보자는 주장이다. 세계에서 제일주장은 바로 보은하는 사람이라는 것으로, 보은이 제일주장이요 경축할 일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경축가는 대종사의 대각의 색깔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가사로, 대종사에게 대각의 경축은 바로 보은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은이라는 말에서 어떤 감응이 일어나고 깨달음의 실천이 약동하는 흥취가 일어나야 한다. 이 점에서 〈정전〉 사은장의 피은-보은-배은의 의미를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피은의 피(被)는 '입을 피'로 옷을 입듯 은혜를 입는 감수성으로 수양력과 연동되며, 은혜를 아는 지은(知恩)은 사리 간에 연마하고 궁구하는 연구력과 연동되며, 은혜에 보답하는 보은(報恩)은 정의는 취하고 불의는 버리는 취사력과 연동된다.

보은의 보(報)는 '갚을 보'로 메아리처럼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라면, 배은의 배(背)는 '등질 배'로 은혜에 등 돌리는 것과 같다. 마치 햇빛을 등지고 햇빛이 없다고 불평하고 외면하는 태도이다.

이처럼 보은자는 은혜에 감사의 메아리로 반응한다면 배은자는 은혜를 등지고 은혜가 없다고 불평하는 것이다. 보은은 사은의 도를 체 받아서 실행하는 것이라면 배은은 피은·보은·배은을 알지 못하는 것과 설사 안다 할지라도 보은의 실행이 없는 것이다. 사은의 피은-지은-보은은 수양-연구-취사의 삼학과 연동되어 있으며, 보은을 취사과목의 하나로 보기도 하고 한편으론 삼대력을 일상생활의 불공자료로 삼기도 한다.

일원상 서원문 중에 '은혜는 입을지언정'과 '해독은 입지 아니하기로써'의 대목이 서원의 큰 대목이 된다. 우리가 신앙하고 수행하는 이유 중 하나가 세세생생 보은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서, 즉 보은은 할지언정 배은은 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정산종사는 권도편 18장에서 "어느 곳에 가든지 매양 대중을 이익 주는 동시에 또한 대중의 환영과 보호를 받게 되기를 심고하라" 한다. 이처럼 보은은 대종사의 서원이요 우리 모두의 서원인 것이다.

천지은의 응용무념의 도, 부모은의 무자력자 보호의 도, 동포은의 자리이타의 도, 법률은의 불의를 제거하고 정의를 세우는 도가 보은의 대요이며 강령이다. 이 보은의 강령을 잡아 보은 하는 것이 우리의 영생 서원이요 경축할 일인 것이다.

대종사의 대각의 특징은 보은에 있다. 보은과 자비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모든 존재가 한 몸이라는 것을 여실히 아는 것을 지혜라 하며, 이런 지혜의 동체의식(同體意識)으로 일체중생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을 자비라 한다.

보통 자비에는 시혜적(施惠的) 요소가 있다. 역량이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다. 높은 저수지에서 낮은 평야에 물을 대는 것과 같다. 자비에는 능력이 큰 사람과 능력이 부족한 사람의 구분이 있는 것으로 수준차가 있는 등급의식이 암묵적으로 깔려 있다. 자비의 의도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그 능력을 발휘하여 능력이 없는 사람을 내 몸처럼 대하라는 지도자 의식이라 할 것이다.

이에 비해 보은에는 이런 등급의식이 없다. 서로 서로 보은의 대상일 뿐이다. 은혜를 입었기에 은혜를 갚는 것으로 피은에는 평등이 바탕 되어 있다. 능력의 유무를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갚느냐 안 갚느냐는 당위의 문제가 선재(先在)해 있다.

이 보은의 차원에서는 시혜성이 없다. 소유의식도 근본적으로는 인정할 수 없으며, 내가 잠시 위임받아 관리하고 있을 뿐이니 함께 나누는 것이 당연한 의무가 된다. 이처럼 보은의 사고에는 공심(公心)이 바탕 되며 모든 것을 공도로 보는 것이다. 각자는 사은의 공물이기에 공익으로 되돌리라는 것이다.

또한 보은에는 아만심이 없다. 궁극적으로 아상(我相)이 없다. 응용에 무념할 뿐이다. 자비에는 아상의 함정이 있을 수 있으나 보은에는 원천적으로 아상의 길목이 차단되어 있는 것이다.

원음산책

105장 경축가의 반주를 듣노라면 부드러운 산허리를 거니는 맛이 있다. 부드럽게 부드럽게 나무 사이를 거니는 기분이며, 숲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맞으면서 한가롭게 거니는 기분이 든다.

마음에서 솟아나는 울림을 보폭에 맞추어 거니는 상쾌함도 있으며, 걸음걸음에 한가로우면서 상쾌한 기운이 우러나는 듯하다. 105장은 대종사의 경축가 내용 중 일부에 김세형 작곡으로 원기28년(1943) 성가위원회에 의해 성가로 제정된다.

<나주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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