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 넘긴 초등학생, 30년 배움 향한 기도

손주들과 학교 다니며 늦깎이 공부
이리보육원 고아들 은모로 타자녀교육 실천

아침 등굣길, 양양군 상평초등학교 들어서는 아이들 사이로 할머니 한 분이 눈에 띈다. 선생님 같기도, 교직원 같기도 하지만 책가방까지 야무지게 멘 그에게 아이들이 건네는 인사, "할머니, 숙제 다 했어", "받아쓰기 연습 어렵더라~ 이따 내가 알려줄게".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로 지난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그. 평생 배움에 대한 서원을 이루고 있는 양양교당 은타원 조은충(66·恩陀圓 趙恩忠) 교도다.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 성가가 있잖아요. 처음 들은 날 집에 가서도 그 성가가 입에서 안 떨어지는 거예요. 못 배운 게 한이 돼서, 배우고 싶은 마음에 30년 동안 성가를 혼자 불렀네요." 용기는 딸 정수진 교도가 먼저 냈다. 아들 상연이 다니고 있는 초등학교에 엄마가 다닐 수 있는지 알아본 것이다. 김석기 교무와도 상의한 딸은 서류까지 다 준비해 엄마에게 입학을 권유했다. "학교에 딱 들어서는데 뒷덜미에 불덩이가 활활 타는 것 같이 부담스러운 거예요. 상담을 받고 나서도 손주들에게 물어봤어요. '할머니가 같이 학교 다니면 창피해?' 했더니 한결같이 '아니, 너무 좋아. 같이 다녀'하더라고요. 그 말에 힘을 냈지요."

손주들뿐 아니라 가족 모두가 할머니의 입학을 환영했다. '1학년 할머니'와 함께 한 해를 보낸 손주들은 학교에서 상으로 노트나 연필을 받아 할머니에게 선물하는가 하면, 한 학년 위인 3학년 상연이는 수학도 가르쳐주고 학교생활도 안내해주는 선배 노릇을 톡톡히 한다.

"같은 반 아이들이 받아쓰기 세 번을 하면, 나는 서른 번을 해요. 나이 먹고 하는 공부라 겨우 외웠다가도 금세 까먹거든요. 그래도 손주 넷을 가까이 키우면서 해라해라 했던 것이 그리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아들 정세원 교도와 딸 정수진 교도, 친손주 혜원, 혜빈과 외손주 혜연, 상연까지 온 가족이 양양교당에 다니며 한 동네 살고 있는 그. 네 손주들 책가방 챙기고 숙제도 봐줬던 세월이 이렇게 빛을 발하는 것이다.

"한번은 같은 반 친구가 그래요. '할머니는 이제 다시 태어나서 우리랑 똑같아졌어'라고요. 일곱 살이 한 말인데도 그 말이 참 따뜻하고 고마웠어요. 그래서 뒤떨어지지 않게 숙제도 공부도 열심히 해요."

초등학교에 다녀보니 급식도 주고, 크레파스로 그림도 그리고, 방과후 서예도 가르쳐주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는 조은충 교도. 학교가 교당에서 불과 몇 발짝 떨어진 곳이라 오가며 꼭 들러 교무에게 인사하고 숙제도, 피아노도 연습한다.

"교당에 오면 마음이 편해요. 이리보육원에서 김서오 교무님이 해주신 말씀이 그랬어요. '밥 한끼는 굶어도 교당에는 꼭 가야 한다'고요. 그 말씀대로 살았더니 배우는 복도 받고, 가족교화 은혜도 입었지요."

9년 동안 이리보육원에서 근무하던 시절 김서오 원장과 신효석·유묘원 교무의 무아봉공은 그에게 큰 가르침이 됐다. 그 덕분에 원기70년 입교도 하고 '이게 다 복 짓는 길'이라며 힘든 일도 묵묵히 견뎠다.

"그때는 아이들 옷도 얻어 입고, 먹을 것도 밭일 해서 먹이고 그랬거든요 그런데도 교무님들은 항상 맑은 얼굴로 힘든 내색 없이 하셨어요. 원불교 다니면 이렇게 되는구나 싶었습니다."

두 마음 없이 투명하게 신앙해온 그는 보육원의 타자녀교육 정신도 배웠다. 보육원의 고아 아이들과 연을 맺어 이후로도 엄마로 살아온 것. 북일교당, 은평교당을 거쳐 양양에까지 온 지금도 명절이면 찾아오거나 교당에 선물을 보내기도 하고, 몇 년 전에는 결혼식 혼주석에 고운 한복을 입고 앉기도 했다. 이런 은자녀만 20여명에 이른다.

"그런 모습이 가족들에게 좋아보였나봐요. 한번도 교당가자, 입교하자 소리 안 했는데 다들 교도가 됐고, 양양에 와서는 한 교당 식구가 됐지요. 다들 바쁘다보니 일요일 법회 와서 한주간 이야기도 하고 오후에 함께 놀러가기도 해요. 교당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집이에요."

일원가족으로 사니 세대를 떠나 공통화제가 끊이지 않아 좋다는 조은충 교도. 손주들이 교당에서나 집에서나 합장하고 기도하는 모습에 보람과 함께 분발심도 커진다는 그다.

"원불교를 몰랐다면 일원가족 행복도 몰랐을 거고, 인과의 이치도 몰라 살면서 괴로울 때 주저 앉았을 거예요. 이제는 기도하면 빠르든 늦든 언젠가 이루어진다는 것도 알고요. 남의 꼴 봐주는 공부도 조금은 할 줄 알게 됐어요. 하지만 아직 배울 게 너무너무 많아서 아이들한테 '할머니 꿈은 두 개다. 이 생에 대학원이랑 법사할 거다' 그래요."

그토록 오래 불러온 〈성가〉 61장 '아는 것이 힘이다', 그에게는 그 성가가 곧 기도였을 것이다. 어떻게든 법문 담아두고 싶어 한글 더듬더듬 할 때도 그리듯 해온 사경이 몇 권. 이제는 자신감이 붙어 잘도 써내려가는 사경노트에, 일주일이면 다 써버리는 받아쓰기 노트에 조은충 교도의 배움에 대한 30년 서원과 신앙이 곱게 갊아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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