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광화문 광장은 눈물바다가 됐다.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은 "참다 참다 더 못 참겠어서 삭발을 한다"고 말했다. 피해자 가족들과 시민들은 함께 울었고, 하늘에서는 비가 내렸다.

1년 전 우리는 아이들을 삼켜버린 진도 앞바다의 일렁이는 물결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1년이 지나서까지 흐느껴 떨리는 어깨들의 눈물바다를 지켜보게 될 줄은 몰랐다.

세희 아빠는 "대한민국에서 유가족으로 산다는 게 어떤 건지 지난 일 년 동안 저희들이 해 온 것을 보시면 됩니다. (진상규명을 해달라며) 단식을 해야 했고 도보를 해야 했고 삼보일배를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삭발까지 하게 됐습니다. 바라건대 저희처럼 또 다른 유가족이 발생하지 않도록, 간절히 바랍니다. 저희들, 먼저 시작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처럼 되는 사람들이 더 없도록 바라는 마음에서 저희는 앞으로 계속해서 가겠습니다"라며 2일 광화문 광장과 진도 팽목항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 생존자 가족 등 56명이 삭발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상상조차 하지 못할 상처를 입은 그들에게 이 사회는 계속 참으라고만 하고 있다. 어차피 죽은 사람만 억울하지, 돈 몇 푼 받고 진실은 다 덮으라고 말한다. 내 가족이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알려달라고 요구하는 유가족들에게 정부는, 사람들은 무슨 불순한 의도를 숨기고 있다고 몰아붙인다. 그리고 1년도 되지 않았는데 세월호 이야기만 나오면 이제 지겹다고 그만하라고 한다.

나는 아직 모르겠다. 세월호 참사가, 차디찬 바다 속에 갇혀 있는 아이들이 내 자식이 아니라고 어찌 말할 수 있는가. 아니 설사 내 자식이 아니더라도 어찌 그 일이 지겨울 수 있단 말인가.

진실을 알고자 하는 것이 왜 불순한 의도로 몰려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지금 우리 사회 곳곳은 온통 아픔 뿐이다. 세월호의 참극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우리는 왜 눈을 뜨고 보지 못하는 것일까.

나는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들이 있는 광화문 농성장을 떠날 수가 없었다. 그들을 바라보며 이 시대 종교의 역할은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종교인, 아니 다른 종교를 떠나 우리 원불교인은 작금의 현실에 어떠한 대답을 해야 하는가?

이 땅의 가장 아픈 상처를 보듬는 것이, 세월호의 아픔을 함께하는 것이 원불교인으로서 대종사님의 큰 뜻을 따르는 것이라 감히 생각했다. 그것이 병든 세상을 치료하고자 이 회상을 연 대종사의 뜻이라 생각했다.
새로운 100년을 열어갈 원불교는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지금의 이 아픔을 어떻게 위로하고 힘을 실어줄수 있을까.

세월호 희생자들의 완전한 해탈천도와 실종자들의 조속한 귀환, 그리고 온전하고 조속한 선체인양을 통한 진실규명을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세월호를 기억하는 원불교인들의 모임에서는 소태산대종사의 개교의 뜻을 새기며 세월호의 상처를 함께 보듬는 순례길을 떠나기로 했다.

낙원세상을 건설하기 위한 대참회, 대해원의 길을 세월호의 상처가 곳곳에 살아 숨 쉬는 이 땅을 밟으며 가슴으로 보듬어 안고 함께 길을 걷기로 했다. 이를 '세월호 기억순례'라 이름했다.

10일 익산성지에서 출발하는 이 순례길은 익산-전주-김제-고창-영광-광주-목포를 지나 16일 진도 팽목항에 이르는 대참회의 길이다. 매일 시민들을 만날 것이며, 매일 밤 추모제를 열 예정이다.

대종사께서는 이 회상을 열 때에 교법의 시대화·생활화·대중화를 외치셨다. 100년 전의 종교가 아닌 지금 이 시점, 이 사회의 대중들이 원하는 종교, 지금 사회의 가장 낮은 대중들을 위한 불법구현이 되자면 지금 시기 가장 아픈 세월호를 도외시하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금 이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모든 삿된 기운들을 떨쳐내고, 뚜벅뚜벅 대종사의 발자취 따라 걷고자 한다. 정의이거든 죽기로써 행하고, 불의이거든 죽기로써 행치 않는다는 마음으로 10일 순례길을 떠나려 한다.

<영등포교당>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