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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향원 원로교무 4 / '한문화대학' 운영, 교화활기
유향원 원로교무 4 / '한문화대학' 운영, 교화활기
  • 정리=이성심 기자
  • 승인 2015.04.10
  • 호수 17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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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화대불공
이듬해 원기71년 2월14일 전북교구 덕진교당 교감교무 겸 덕진원광어린이집 원장으로 발령이 났다.

10년 된 덕진교당은 아직 초창기나 마찬가지였다. 1층은 어린이집, 2층은 소법당이었다. 전임의 노력에도 교당 부채가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빚을 갚아가며 교도 법호수여식은 뒷마당에서 검은 망을 치고 성대히 했다. 차츰 3층에 법당을 증축하고 어린이집이 활성화돼 대형버스를 구입, 전주 시내를 오가며 활발하게 교화했다. 어린이집이 주최해 전주시내 어린이운동회를 개최할 정도였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함께 근무하는 교무, 부교무, 간사들의 활약이 대단했다.

9년을 근무하며 1년간은 한문화대학을 운영, 36명의 수료생도 배출했다. 원기79년 원광대학교 유병덕 교수가 전주교구에 방문했다. 당시 박정훈 교구장에게 "불교는 문화대학이 운영되고 있다. 우리는 중앙총부가 익산에 있다. 전북의 도청소재지에 문화대학을 개설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박 교구장은 "우리는 교리학교를 개설해서 할 수 없다"고 대답하니, "그러면 시내 어느 교당이라도 문화대학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재차 물었다. 교구장은 "그것은 알아서 하면 좋겠다. 교리학교나 문화대학이 운영되면 교화여건상 얼마나 좋겠는가"하고 대답했다. 이에 유병덕 교수는 덕진교당을 방문했다.

유 교수는 "덕진교당에서 문화대학을 운영하면 어떻겠느냐"는 물음에 "전무출신이라 이동도 하니까 덕진교당 교도회장님과 요인을 모시고 의논하는 것이 좋겠다"고 대답했다. 유 교수는 "그럼 그렇게 하자"하여 요인 몇 분과 오진원 교도회장을 만나 문화대학 개설에 대한 취지를 설명을 했다. 교도들은 "너무 좋다"고 모두 찬성해 덕진교당에서 문화대학을 개설하게 된 것이다.

당시 문화대학 학장은 김영두 교수, 회장에 오진원 교도회장, 총무는 박정호 교도, 강사 김성철 교수, 최오목 강사 등으로 정했다. 문화대학생에는 시내 저명한 인사들이 주축이 돼 개원식을 했다.

개원식에서 기독교 이상주 박사가 축사를 했다. 그는 "원불교는 마음이 넓어 좋다"고 말했다. 기독교인인 자신을 불러 축사를 하게 해 주니 감사하다는 것이다.

박정훈 교구장은 '일원상 진리'에 대한 주제 강연을 했다. 유병덕 교수는 환영사를 하며 문화대학 개원을 참으로 기뻐했다. 시내 교무들과 이웃교당 교도들도 다수 참석해 문화대학은 차분하게 진행됐다. 진행되는 동안 이을호 박사 등이 초청됐다. 훌륭한 강의가 진행된 셈이다. 오진원 회장은 기쁜 마음에 당신의 땅에 문화대학 설립 계획도 세웠다. 그리고 오 회장은 땅 39,600㎡을 희사했다. 그 중 26,400㎡는 재단법인에 이전하고, 나머지는 사회복지로 이전했다.

덕진교당에서 인사이동 때가 되어 순천교당으로 발령이 났다. 순천교당 6대 교무였다.

전임교무들은 법당을 새롭게 짓고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등 노고가 많았다. 어린이집 운영은 그런대로 되고 있었다. 나는 일반교화에 주력했다. 열심히 노력한 끝에 교당 옆 땅도 매입하고 교당 단독으로 바자회를 해 독거노인들도 돕는 등 교화가 활발하게 진행됐다.

이는 송선경 봉공회장, 박보선 총무, 박성식 교도 등의 참신한 아이디어와 교도들과 요인들의 적극적인 노력 봉사의 결과였다. 교도들의 합심합력 공덕으로 교화가 활발해 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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