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된 마음과 착심 버리는 연습을 게을리 말라

夫欲修練인데 當先捨外事之紛撓하라 外事平定하야 無有 心然後에 安坐而內觀心起하라 若觀一念便起면 則須除滅하야 務令安靜이니라 其次는 雖非的有貪着이나 浮遊亂想이라도 亦盡滅除하고 晝夜勤行하야 須臾不替니라 唯滅動心이요 不滅照心이니 但凝空心이요 不凝住心이라 不依一其爲心之常이라 若住則凡心이 躁競하야 煩惱續起라 故로 定靜之門에 以無住로 爲上하니라

무릇 수련하고자 하면 마땅히 먼저 바깥일의 어지러움을 놓아야 한다. 바깥일을 평정하여 거슬리는 마음이 없게 한 뒤에 편안히 앉아 안으로 마음이 일어남을 보라. 한 생각이 문득 일어남을 볼 것 같으면 모름지기 제거하여 없애서 힘써 편안하고 고요하게 하라.

그 다음은 비록 그릇된 탐착이나 떠돌아다니는 어지러운 생각이 있어도 또한 다 제거하여 없애고 낮과 밤으로 부지런히 수행하여 잠시도 사귀지 않아야 한다. 오직 동하는 마음을 없애며 비추는 마음을 없애지 말라. 다만 빈 마음을 맺을 것이요, 주착하는 마음을 응취하지 말라. 한 법에도 의지하지 말고 마음을 평상심으로 써라 만약 마음이 주착되면 범상한 마음이 조급하게 다투어 번뇌가 계속 일어난다. 그러므로 정정의 문에 주착하지 않는 것으로 최상을 삼는다.

마음을 보아 알아차리는 관심 공부이다. 경계를 따라 집착된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알아차려 공적영지의 자성에 반조하면 고뇌의 마음이 사라진다. 그러나 수없이 반복해서 환화의 착심을 제거하는 공부를 해야 함을 전제로 한다.

반드시 인심을 도심으로 제거함을 의미한다. 〈중용〉에서는 오직 본능적 욕심인 인심은 위태롭고 공적영지 광명의 도심은 미묘한 것이니, 오직 진실된 마음으로 한결 같이 하면 진실로 그 중을 잡는다고 하였다. 중은 희노애락의 감정이 나타나기 전 밝은 마음이다. 도심을 찾아 도심을 보전하려는 공부를 말한다. 이 마음을 바라보는 관심 공부는 마음에 망념이 없는 무심의 경지까지 되도록 하게 한다.

〈금강경〉에 "마땅히 주착한 것이 없이 그 마음을 내라 (應無所住而生其心)"는 무주의 마음공부와 같다.

且初學之人은 息心甚難하니 或息不得暫停還失이니 然이나 去留交戰에 百體流行하야 久久精思하면 方乃調熟하나니 勿以暫收不得爲憂하고 遂廢千生之業源하라

처음 공부하는 사람은 마음을 쉬기가 아주 어렵다. 혹 마음을 쉰다 해도 잠깐도 마음을 머물지 못하고 도로 잃는다. 그러나 마음이 나가고 머물게 하는 데에 사귀어 싸우면 백가지로 그릇된 것이 유행하여 일어난다. 오래 오래 정일하게 생각하면 바로 이에 골라져 익숙해진다. 잠시 난상과 탐착을 거두어들이지 못했다고 걱정할 것이 없다. 드디어 천생의 업의 근원을 없앤 것이다.

사람마다 기질이 다르다. 업장이 엷은 기질이 있고 두꺼운 기질이 있다. 업장을 녹여 벗기는 일이 쉽지 않다. 상처 나지 않게 벗겨 내야 한다.

소태산대종사의 '무시선법'은 여기에 많이 근거하고 있다. 그릇된 마음과 착심을 버리는 싸움을 계속 정성스럽게 하는 것으로 공적영지의 지혜로운 마음을 유지하게 하는 공부이다.

其次는 小得淨已면 卽於行住坐臥之時와 涉事之處와 喧鬧之所에 皆作意安하며 有事無事에 常若無心하며 處喧處鬧에 其志唯一이니라 若速心太急하면 又卽成病하야 氣發狂顚하리니 戒之愼之하라 心若不動하면 又須放任하라 如此則 寬急이 得所하야 自恒調適하며 制而不着하며 放而不動하며 處喧無惡하며 涉事無惱者此是眞定이니라 不以涉事無惱라 故로 求多事하며 不以處喧無惡이라 故로 來就喧이니라 以無事로 爲眞性하고 以有事로 爲應跡이니라(應跡應物通明也)

그 다음 단계는 조금 청정한 마음을 얻었으면, 곧 행하고 서고 앉고 눕는 때와 일을 건네는 곳과, 시끄러운 곳에 모두 뜻을 편안히 하여 일이 있고 일이 없고 항상 고요한 곳이나 시끄러운 곳에 무념으로 하여 그 뜻을 하나같이 해야 한다. 만약 마음을 묶어 너무 급하게 하고 또 급하게 하면 병을 만들어 기운이 일어나 미쳐 엎어지는 것이니 경계하고 삼가하라.

제어하되 집착되지 않고 놓아도 움직이지 않으며 시끄러운데 있어도 싫어함이 없으며 일을 건네도 번거로움이 없으면 이것이 참다운 정이다(무심의 경지를 말한다). 일을 건네어 번뇌가 없지 않기 때문에 많은 일을 구하고 시끄러운데 있으면서 싫어함이 없지 않기 때문에 억지로 나아가 바로 시끄럽게도 한다. 일이 없는 것으로 참 집을 삼고 일이 있는 것으로 자취를 응해야한다(지혜를 씀이 끝이 없기에 자취에 응한다고 한다).

마음이 경계에 집착하지 않는 훈련을 하여 조금 익숙해지면 시끄러운 데에 마음을 맡겨 시험해 본다. 마치 진묵대사가 시장에 가서 그 마음을 살펴 본심을 잃지 않는 것과 같다. '무시선법'에서도 이를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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