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벽화, 길 위의 피아노, 거리공연… 특정대상, 관람료 없이 누구나 참여

철거명령 바꾼 통영 동피랑마을 벽화
시민에게 열린 안양예술공원 작품들


꼬불꼬불 골목을 비집다 만난 파란 바탕의 흰색 날개 벽화. 딱 어깨만한 폭이 있어 사진찍기도 좋은 이 벽화 앞에 사람들은 줄을 길게 서서 천사되기를 기다린다. 몇 년 전 TV프로그램 '1박2일'에 나와 유명세를 탄 이 벽화는 이른바 '이승기날개그림'으로 서울 종로구 이화벽화마을에 있는 그림 중 하나다.

▲ 안양예술공원 작품 '나무 위의 선의로 된 집' 내부. 곡선과 입체의 공간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화동의 봉제노동자주민을 위해 시작

특정대상도 관람료도 없는, 나와 이웃, 우리 모두를 위한 예술. 점차 가까워오는 이 움직임을 우리는 '공공예술'이라 부른다. 이승기 날개그림처럼 그림이나 조형물 등 미술 분야가 주를 이루지만, 광장 한복판에 둔 피아노나 계단 모양 건반으로 사람들이 오가며 멜로디를 만드는 음악, 플래시몹과 같은 공공퍼포먼스 등도 점차 많아지고 있다.

이화동의 공공예술은 원래 이 지역의 실제 주민들을 위해 시작됐다. 이화동은 인접한 충신동, 창신동과 함께 반세기 넘게 동대문시장에 의류, 침구류, 신발, 수예, 커튼 등을 공급하는 생산지였다. 아직도 직원 서너명 단위의 소규모 봉제업체가 이화동 곳곳에서 재봉틀을 돌리고 있는데, 이 이화동 공공예술은 바로 이 봉제노동자들을 위해 시작된 것이다. 2006년 낙산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통해 박종해 작가는 벽에 '봉제인, 존경의 벽'을 그렸고, 이후 경희대 이태호 교수팀은 굴다리에 봉제 노동자를 그렸다. 역사와 이웃을 표현한 벽화로 이화동만의 정서를 담아내는 것, 공공예술은 바로 이러한 특별한 일상성을 지니고 있다.

▲ 국내 공공예술의 상징 통영 동피랑마을.

작은 아이디어로 이룩한 기적

경남 통영의 동피랑마을은 국내 공공예술의 상징과도 같다. 충무김밥과 시락국 향기 넘실대는 통영항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동피랑마을은 2006년 철거될 위기에 처해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환경단체 '푸른통영21'이 '동피랑색칠하기'라는 공모전을 열어 전국 미대생들을 선발, 담벼락에 벽화를 그리게했다는 동화같은 이야기다.

이 사연이 전해지자 너도나도 이 곳을 찾았고, 이후에도 2년마다 전국의 뜻있는 시민들이 벽화를 그려왔다. 동피랑은 그렇게 색채를 입고 숨결을 얻었으며, 통영시 역시 이 곳을 보존시키기로 결정했다. 페인트 몇 통과 붓 몇 자루가 이뤄낸 이 값진 승리, 통영 동피랑마을은 우리 사회에 공공예술의 이름과 의미가 알린 계기이며, 시민운동의 승리라고도 불린다.

50여 세계적 작품 '지붕없는 미술관'

경기도 안양은 아예 공공예술을 주제로 축제도 공간도 열어 한국 공공예술의 메카로 급부상했다. 수십년간 시민들의 핫 플레이스였던 안양유원지를 재개장하며 아예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를 열어 '안양예술공원'을 꾸렸다. 공원에 들어선 50여개의 공공예술 작품들은 곧 '지붕없는 미술관'으로 불리며 안양을 넘어 전국의 관광객들을 모으며 안양의 효자공간으로 거듭났다. 작년에는 대한민국 공공디자인대상 최우수상을 수상, 프로그램의 공간화 기획와 실행이 인정을 받았다.
APAP는 신청에 따라 작품해설사와의 투어가 제공되기도 하지만, 그냥 혼자 둘러봐도 충분히 좋다. 50여개의 작품들 하나하나 그 창의력과 아름다움에 발이 멎는다. 투어 시작점인 파빌리온 근처 공중전화 부스는 '나는 당신을 생각합니다'라는 작품으로, 20분마다 전화벨이 울린다. 지나가던 누군가가 수화기를 들면 "나는 당신을 생각합니다"라는 목소리가 들려와, 고독한 현대인에 대한 위로가 담겨진 작품이다. 이 밖에도 108개의 거울기둥으로 번뇌를 표현한 거울미로, 1평전망대, 하늘다락방, 물고기눈물분수 등의 창의적이며 상상력 넘치는 작품들이 산책길을 걷는 시민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널리 모두를 이롭게 하는 공공예술 역시 동전양면처럼 취약점을 가지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그대로 살고 있는데, 공공예술이 마치 자기 땅에 직접 사들인 작품이라도 되는 양 몰지각한 관광객도 일부 있다는 것이다. 동피랑마을과 이화벽화마을이 유명해질수록 주민들은 관광객들의 소음과 쓰레기때문에 고통받아야했다. 주민들 사진을 함부로 찍거나 현관·골목을 아예 전세낸 듯 점유하는 행위도 주민들을 힘들게 했다.
실제로, 이승기날개그림의 경우 일부 관광객이 밤에 찾아와 옷을 거의 다 벗고 사진을 찍는 통해 심심찮게 신고가 접수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사라졌던 날개그림이 2013년 사람 많고 차량 많은 너른 자리로 나왔으니 이제는 추태가 좀 덜 발생된다는 씁쓸한 후문이다. 열린 공간일수록, 제약이 없을수록 더욱 더 신사적이며 공정해야하는 것이 진정한 공공예술에 대한 자세다.
공공예술의 또 하나의 특징은, 널리 누구나 즐기는 공공예술의 가치를 담고 있는 만큼 특별히 만지지 말라거나 넘지 말라는 제약이 없다는 것이다. 누구나 만지거나 사진을 찍어 간직할 수 있으며, 아이들이 작품 사이사이를 뛰거나 장난을 쳐도 된다. 예술을 일상에 가장 가깝게, 자유롭게 느끼고 해석하도록 그냥 두는 느슨함과 여유로움. 이것이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 바빠지는 현대인들에게 공공예술이 더욱 와닿는 이유일 것이다.
원하는 누구나 만들고, 누구든 즐길 수 있는 공공예술은 생산자나 소비자가 불특정 다수로, 거리예술가나 밴드, 다양한 소모임에서 하는 거리전시회나 버스킹, 플래시몹 등도 포함된다. 원기100년 우리는 어떤 공공예술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감동을 전할 것인가. 한정짓지 않으며 기발하고 자유로운 예술의 무한한 가능성을 잘 녹여낸 똑똑한 공공예술이 기대되는 요즘이다.

▲ 나오시마 섬의 상징인 노란호박은 단조로운 바다 배경을 예술로 만든다.

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공공예술의 섬 나오시마


일본 시코쿠 가가와현 나오시마는 손꼽히는 공공예술의 섬이다. 구리 제련소가 있던 투박한 섬에 1989년 재생프로젝트가 시작된 후 한해 수백만에 이르는 여행자, 예술가들이 이 섬을 찾는다.

나오시마의 상징은 빨강, 노랑, 초록의 호박. 어른 몸 만한 호박들이 섬 곳곳에 놓여있어 건조하고 밋밋한 바다와 선박, 폐공장들을 재미있고 멋진 배경으로 바꿔놓는다.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베네세하우스와 지중미술관으로 수준높은 현대예술도 입혀냈다. 바다를 배경으로 디자인된 건물들은 외관부터가 누구에게나 감동과 영감을 주는 예술작품이다.

한국에서는 오사카나 오카야마 직항으로 나오시마에 닿을 수 있다. 오카야마에서 신칸센으로 1시간, 우노항에서 30분이면 도착, 전기자전거를 빌려 섬을 돌면 이 곳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꾸며낸 삶 곳곳의 소박한 예술을 속속 느낄 수 있다. 가장 가까운 교당은 환승포함 신칸센 2시간거리 오사카교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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