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가 산을 붉게 물들이더니 목련화 벚꽃이 차례로 만개하고 산철쭉이 연분홍 나들이를 시작했다.

벚꽃 흩날리는 봄날에 꽃잔디 들꽃이 여기저기 어여쁜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새벽엔 서리를 밟고, 아침엔 안개 자욱하게 대관령 너머에 풍차가 아득하다. 이렇게 풍운우로상설로 사시가 순환하는 자연은 늘 새로운 희망에 벅찬 삶으로 내 곁에 다가오곤 한다.

천지자연은 일월로 밝게 비추며 한 기운을 통하여 무위이화로 우주만유를 장양시킨다. 그 속에서 만물은 절대 공정한 은혜를 입고 살아간다. 천지자연은 밝고 공정하게, 정성으로 순리자연하게 한량없는 은혜를 베풀면서도 아무런 상이 없고 오직 실하게 변화 속에 전진하며 진행시킨다. 절대 머물거나 그림자를 두지 않는다.

또한 태초부터 지금까지 찰나도 쉬거나 허송을 하지 않는 가운데 무한동력으로 운행하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만물이 거기에 의지하고 살수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광대무량한 속에서 응용무념한 도를 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보통 범부 중생들의 마음은 끊임없이 무언가로부터 걸리적 거린다. 늘 노심초사하고 근심걱정이 많다. 왜 그럴까 사심과 망념이 끝없이 동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일이 지나고 나면 마음에 티끌이 남아 무명 속에서 끝없이 업장을 쌓아간다.

그 업장과 업력속에 갇혀 버린 이상 깨달음이 없이 살아간다면 마치 벌레가 하루 종일 쌀독 안에 돌아다니지만 결국 그 안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이 정신세계도 항상 틀 안에서 나라는 상에 집착하여 모든 것을 자기 집착과 욕심으로 살아가게 된다.

이미 나라고 하는 틀이 형성되었다면 근심걱정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것을 지키고 보호하려는 본능이 앞서기 때문이다. 마음을 비우고 천지기운과 합해져야 모두를 살리는 참된 근심걱정을 할 수가 있다.

자기를 위한 근심걱정이 아니라 공(公)에 바탕한 근심걱정으로 헌거럽게 살면서도 비장하게 세상에 십자가를 질 수 있는 행이 나올 것이다.

"한 가정의 살림에도 주인은 머슴보다 걱정이 많나니, 자기 살림이기 때문에 더 생각을 하게 되며, 살림 속을 더 알므로 걱정을 먼저 하게 되나니라. 걱정을 하는 것도 알아야 걱정이 있나니, 불보살들은 생사 대사를 알고 인과 보응을 알고 만생령이 다 한 권속임을 알기 때문에 걱정 없는 가운데 큰 걱정이 있으시고, 범부 중생들은 모두 모르고 자행 자지를 하기 때문에 걱정 바다 속에서도 참 걱정이 없나니라. 그러므로, 교중 살림에 대하여서도 걱정스러운 일은 앞장 서서 함께 걱정하고 알뜰히 챙기어 그 해결에 힘쓰는 이가 공도의 참다운 주인이니라."(〈법어〉 공도편 16장)

항상 마음을 비우고 공도에 뜻을 두어야 참으로 큰 걱정을 하고 큰 살림을 하는 주인공이 될 것이다.

<우인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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