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교헌〉 전문에는 '일원주의 사상에 입각해 공화제도의 체제와 십인일단의 교화로 참문명세계를 건설하기 위하여'라는 문구를 통해 공화제도(共和制度)가 우리 교단의 핵심이념임을 밝히고 있다. 과연 공화제도는 어떻게 우리 교헌까지 들어오게 됐을까?

공화제도는 영어 'Republic'을 번역하면서 등장한 말이다. 이의 원류를 찾아보면 고대 그리스를 기원으로 하고 있으며 오늘날과 같이 공화제도를 군주제도가 아닌 통치체제를 가리키는 말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프랑스대혁명을 거치면서였다. 이러한 공화제도가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세기 중엽 중국에서 전래된 서양서적을 통해서였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1919년 3· 1운동을 전후한 시기라 할 수 있다. 1911년 중국에서의 신해혁명, 1917년 러시아혁명 등을 통해 등장한 공화제도는 1919년 4월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과 동시에 공포된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을 통해 민주주의와 결부되어 우리 정치체제에 수용됐다. 지금의 헌법 제1조 제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에서 알 수 있다시피 이러한 민주공화제는 여전히 우리 정치체제의 중요한 가치로 자리잡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교단에서 공화제도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우리 교단에서도 공화제도는 일찍부터 핵심가치로 자리잡고 있었다. 정산종사, 또는 대산종사 법문에 일원주의, 십인일단과 함께 거론되는 것이 항상 공화제도였다. 대산종사께서 대각개교절 경축사를 통해 "공화제도는 다 같이 힘을 합해서 낙원세계를 건설하는 대평등제도인 바 가정· 사회·국가며 세계나 교단을 다스릴 때 서로 의논해서 전체의 힘을 발휘하자는 것이다. 종래에는 국가나 단체를 일인독재로서 이끌어 왔던 바 그 지도자의 인격이 비범하여 국가나 단체를 위한 노력이 헌신적이었을 때를 제외하고는 대개 지도의 잘못으로 인하여 전체의 불행을 가져오는 경향이 많았으므로 오늘날 민주주의가 출현하게 된 것이다"고 공화제도에 대해 상세한 법문을 하신 바 있다. 위 법문을 볼 때 우리 교단이 인식하는 공화제도는 우리 헌법에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이 '민주공화제도'이며 또한 '평등'의 실현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의 교헌개정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또 어떤 방향을 지향해야 하는가. 우리나라 헌법에 민주공화제가 명시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것이 의미를 가지기 시작한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실현되고 있는 우리 정치체제에 대하여 형식적 민주주의라고 비판하며 실질적 민주주의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으며 이를 반영하기 위해 여러 노력들이 개진되고 있다. 최근의 개헌 논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거버넌스(governance)라고 불리는 참여 민주주의, 지방자치제로 실현되고 있는 분권형 민주주의, 온라인을 통한 주민자치실현 등이 다 이러한 실질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방편들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최근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이 '소통'이다. 결국 실질적으로 국민이 주인되는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전달돼야 하고 이러한 목소리를 통치자가 무시할 수 없어야 하며 또한 국민들간의 또 통치자와 국민들간의 자유로운 의견교환이 이루어지는 이른바 소통의 정치가 핵심임을 인식한 결과라 할 수 있다.

현재 교헌개정 논의도 이러한 소통의 강화라는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교도들의 뜻이 중앙총부로 제대로 전달되어야 하며, 그 반대로 중앙총부의 뜻 역시 교도들에게 제대로 전달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 중에 교도들간 또 교단 내 각 조직간의 의견교환 역시 활발하게 이루어 질 수 있어야 한다. 현재의 교헌개정 논의 과정 중에 이루어지고 있는 종법사, 수위단, 교정원, 중앙교의회 또는 감찰원 등의 위상 및 권한의 변화에 대한 긍정 또는 부정도 이러한 '소통'의 관점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권한의 축소 또는 강화 그 자체가 주장 또는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평등의 실현을 위한 공화제도의 이념에 부합하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그 기준이 돼야 할 것이다.

<총강분과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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