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학교를 이동 하면서 또 새로운 아이들과 만났다. 해마다 학기초가 되면 아이들과 같이 하는 활동중에 하나가 마음일기를 쓰는 일이다. 올해는 마음일기에다가 두가지 덧붙여 감사일기 쓰기와 바꾸고 싶은 습관 한가지를 정해서 매일 체크하고 확인 받는 활동을 하고 있다.

열심히 참여하는 학생들에게 자연스럽게 눈길이 간다. 학교에서 원근친소에 끌리는 일이 바로 이 일이다. 학생수가 너무 많다 보니 마음일기를 쓰면서 나와 교류하는 학생들에게 더 많은 관심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마음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 아이들에게도 마음일기를 기재하게 한 지도 벌써 8년이 되어가는 것 같다.

얼마전 스승의 날이라 8년 전 고1 담임을 할 때 우리반 학생이 찾아왔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마음일기 이야기를 했다. 그때 우리반에서 있었던 소위 마음일기 사건이었다.

우리 반 학생 중 한명이 야자를 빠지고 싶은데 핑계를 대고 빠질려니 귀찮고 그러다가 나에게 직접 보내달라고 이야기 했는데 내가 한 시간만 하고 가라고 했다고 한다. 그 학생은 인상을 팍 구기면서 마음일기를 써놓고 1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내가 교실로 가서 그 일기장을 보게 되었다. 일기장에는 야자를 보내주지 않았다는 그 분함이 그대로 욕으로 한바닥 가득 적혀 있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손이 떨리는 데도 그 일기를 다 읽었고 그 학생은 집으로 보내고 교실을 나왔다. 그 날 저녁 나는 잠을 못자고 마음일기를 썼다.

자존심이 상하고 학교를 그만두고 싶고 수치심이 느껴지고 온갖 마음들이 다 일어났다. 그 때는 나도 공부한지가 얼마되지 않아 마음의 힘이 없었던 때였지만 스승이 시키는 그대로 해 본 것 같다. 다음날 아침 조회시간에 내가 쓴 마음일기를 읽어주었고 아이들은 다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이들을 혼내기보다 내 공부를 할 때다 생각하고 공부를 했던 것 같다. 그리고는 그 일기를 쓴 학생을 앞으로 불러서 칠판에다 그 욕을 영어로 적게하고 그대로 몇 번 읽게 하고 들여보냈다. 그리고 그 일은 끝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뒤처리를 할 수 있었던 게 다 마음공부 덕분이었다,

그 일 이후 나는 마음일기가 나의 교직생활에 큰 무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생겼다. 대종사님 공부법의 위력은 공부를 할수록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지만 이 공부법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학교라는 공간이 나에게 있다는 생각을 하면 감사할 따름이다.

올 2월에 졸업시킨 경주는 2달 남짓 대학생활을 하면서 꽤 힘든 모양인지 다시 마음일기를 써야 겠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경주는 고1때부터 고3때 까지 마음일기로 만났는데 경주와의 만남은 나에게도 큰 공부가 되었다. 다른 학생들은 흐지부지하던 마음일기를 경주는 일주일에 한번 꼭꼭 기재해서 내 자리에 갖다놓았고 그 일기를 감정해 주면서 감동한 적이 엄청 많았던 것 같다.

힘든 경계. 행복한 경계. 성적경계. 친구경계, 가족경계등 소소한 일상의 경계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그대로 세밀하게 기재해서 감정을 받아가던 그 성실함에 내가 반한 것 같았다. 마음일기로 만나는 날에는 경주와 나는 학생과 제자라기 보다는 같은 법을 공부하는 도반 같은 느낌도 많이 받았다.

너무나 평범한 아이였던 자신 안에 그렇게 열정적이고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자신감 백배를 얻었고 마음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그 엄청난 비밀도 알고 있는 기특하고 사랑스러운 제자이다. 방송작가가 꿈인 경주는 올해 삼성꿈장학 재단에서 주는 대학 4년 전액장학생으로 진학했다. 대학에서도 방송 동아리에 들어가서 힘들기는 하지만 재미있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최근에 나는 교사로서 꿈이 새로 생겼다. 이 세상을 자유롭고 행복하게 변화시킬 경주 같은 제자 5명 만드는 것, 그게 지금 나의 꿈이다. 아이들이 어떤 경계로 힘들어하는지를 알고 도와주면서 좋은 교사가 되는 것. 그런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마음일기를 기재 시키고 문답감정을 하면서 내 공부를 하는 것. 그래서 나는 이 마음공부를 멈출 수가 없다.

비오는 날 무서운 이야기를 해주시겠다고 약속한 선생님이 그 약속을 지켜줘서 감사하다고 감사일기를 적는 예쁜 아이들 속에 나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부산 중앙여자고등학교 / 서면교당>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