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링주빌리 확산

▲ 성남시가 펼치는 빚탕감운동 '롤링주빌리'는 지역사회의 공동체정신을 되살리는 프로젝트다.
'빚지는 것도 능력이다'고 하지만, 내 것도 아닌 돈을 빌려 쓰는 것은 엄연한 채무이자 갚아야 할 숙제다. 가계부채 증가율이 사상 최대치를 갱신하는 가운데, 집집마다 진 빚을 합친 금액은 무려 1100조원에 이른다. 1인당 2천만원이 넘는다는 계산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는 설득력없는 말을 늘어놓으며 이렇다 할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빚이 주는 고통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가난한 사람들은 물론, 부자들도 빚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고 만다. 현대인에게 가장 시급한 것이 삶에 대한 고민이나 반조가 아닌 빚 해결이 된 시대, 이를 위해 지역사회와 시민단체, 종교계, 문화체육계가 움직이고 있다.

성남시는 작년 '성남판 롤링주빌리'로 화제가 됐다. '롤링주빌리(Rolling Jubilee)'는 2012년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시작된 '빚 탕감 시민운동'으로 시중에 떠도는 부실채권을 사들여 소각해 시민들의 빚을 해결해주는 프로젝트다. 연체가 길어진 부실채권을 대부추심업체들이 싼 가격에 사들인 후, 이 과정의 이자까지 채무자에게 갚게 하는 부조리를 고발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작년 8월 성남시는 지역의 종교단체협의회와 사)희망살림, 기업체, 전통시장 상인회 등과 성금을 모아 부실채권 26억원을 소각해 악성채무에 시달리던 171명을 구제했다. 지역이 함께 잘 살자는 공동체 정신을 되살린 이 운동은 큰 감동으로 전해졌으며, 올해 1월까지 총 3200여 만원 모금으로 33억원의 채권을 소각, 채무자 486명의 고통을 덜어줬다.

롤링주빌리 정신은 시민단체와 종교계, 문화체육계로도 확대됐다. 에듀머니, 민생연대, 해오름 등 사회적기업과 시민단체가 함께한 '빚탕감운동'도 작년 한 해 216명을 구제했다. 성남시의 교회들도 나섰으며, 대한불교 천태종 대광사도 '빚탕감 모금 대법회'로 그 의미를 이어갔다.

최근에는 프로축구팀 성남FC가 메인유니폼에 '롤링주빌리'를 로고로 새겨, 기업광고 대신 캠페인을 택한 국내 최초 사례로 기록됐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이 유니폼을 입어 아시아 전역에 홍보한다. 선수들 역시 경기를 이기거나 골, 어시스트마다 기부를 이어가며 '시민구단'의 정의로운 면모를 보여줄 예정이다.

관심과 호응이 다소 주춤해진 최근, 롤링주빌리의 불씨를 되살려 이어가는 곳은 개신교다. '롤링주빌리' 자체가 일정기간마다 부채를 탕감해주던 성경의 '희년' 개념에서 따온 것인데, 올 4월에는 이를 학자금 부채에 허덕이는 20~30대 청년들에게 확대한 '청춘희년운동본부'를 꾸린 것이다.

이 단체는 다큐멘터리 영화 '쿼바디스'의 김재환 감독이 수익금 3000만원을 기부하면서 시작됐다. 학자금대출을 6개월 이상 연체한 다중 채무자 10명을 우선 지원하고, 이후 교회와 시민들의 수원으로 올해까지 1억6000만원 모금과 80명 구제를 목표로 뛰고 있다.

부채탕감운동의 방식은 생각보다 쉽다. 채무가 10년이 넘으면 그 가격이 1~3%대로까지 떨어지는데, 100만원짜리 빚의 경우 그 채권을 1~3만원에 살 수 있다. 이런 채권들을 추심업체로부터 사들여 소각함으로써 가장 어려운 계층의 고통을 해결해주는 것이다.

성남의 시민과 단체, 종교와 기업들이 마음을 모아 없앤 채권의 채무자들은 10년 이상 빚 독촉과 협박에 시달려온 우리 사회 가장 어려운 이웃들이다. 이들에게 전해지는 "당신의 빚이 소각됐습니다" 편지의 새 희망과 가능성은 얼마나 클까. 우리 교단이 시민에 의한 시민의 빚 탕감 프로젝트 '롤링주빌리'에 주목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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