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원 주변에 휘황찬란하게 여기저기 수놓았던 색색이 아름다운 꽃들은 이제 거의 지고 신록이 우거지고 있다.

한 찰나지간도 머무르지 않으면서 역동성있게 변화무쌍하면서 만물을 장양시키고 또한 숙살만물하면서 시간과 공간속에서 우주의 한 기운으로 내가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당연한 변화속에 발맞추어 천지살림을 맡아야 하는데 정신없이 망상과 무기공과 혼침속에 나를 가두어 버리고 스스로 낙오자가 되어 삼계화택(三界火宅)에서 고를 달게 받으며 지내온 세월이 얼마인가.

범부중생은 일상생활속에 무명습기로 육근을 작용하며 스스로 현애상(懸崖相)을 두어 '나같은 중생이 어떻게 부처가 될것인가' 엄두도 내보지 못하고 스스로 굴레속에 가두어 버리고 그대로 안주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늘 잘하면 잘하는 데에 걸리고 못하면 못하는 데에 걸려서 틀속에 갇혀 자유를 잃어버리게 된다. 불교경전인 금강경의 대의는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이다.

즉 응하되 주한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 하신 것이다. 어디에도 주한 바가 없어야 경계를 대하더라도 바로 정견(正見)을 하고 바른 행이 나올수가 있는데 착심과 무명(無明)에 가려 있거나 흔히 일상성에 빠져 있다 보면 생각생각이 상(相)이 생겨서 마음이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또한 열심히 수도하면 공부를 잘한다는 상이 있으므로 법상 비법상까지 놓게 하여 불보살의 경지에 밝혀주셨다.

마음에 상이 있기 때문에 잘하지 못하면 스스로 상대를 지어서 고를 장만하며 퇴굴심이 나고, 잘하면 교만해져서 스스로 강급하게 되는 것이다.

'미(迷)하면 납작해지고 좀 알면 높아지고 그거 그럴 것이 없다. 깨면 부처다. 중생상 떼기는 오히려 쉽지만 부처상 떼기는 더 어렵다.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 일념미생전(一念未生前) 미오(迷悟)가 하나 그것도 아니다. 천연 자연 그대로 전체지 하나가 아니다. 그냥 일원상 자리다. 은현(隱顯)의 이치를 알아야 명암에 묶이지 않는다.'(〈대산종사법문5집〉 연도수덕 삽삼조사게송)

냇가에 나무토막이 어디에도 걸리지 않아야 마침내 큰바다에 도달할수 있듯이 공부인은 수많은 과정을 만나게 될 때에 중생상에도 부처상에도 걸리지 않고 놓고 놓아서 보림함축하며 결국은 진리에 합일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불법(佛法)을 뗏목으로 비유해서 법에도 묶이지 않도록 길을 가르쳐 주셨다.

대종사님은 그러한 상없는 공부를 일상 생활속에서 진공으로 체를 삼고 묘유로 용을 삼아서 행주좌와어묵동정(行住坐臥語默動靜)간 그대로 우리의 육근을 통해서 활불 활선이 될수 있도록 무시선법으로 공부의 체를 잡아주신 것이다.

<우인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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