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꽃 핀 유월의 하늘은
사뭇 곱기만 한데
파라솔을 접듯이
마음을 접고 안으로 안으로만 들다
이 인파 속에서 고독이
곧 얼음 모양 꼿꼿이 얼어 들어옴은
어쩐 까닭이뇨

보리밭엔 양귀비꽃이 으스러지게 고운데
이른 아침부터 밤이 이슥토록
이야기해 볼 사람은 없어
파라솔을 접듯이
마음을 접어 가지고 안으로만 들다
장미가 말을 배우지 않은 이유를 알겠다
사슴이 말을 하지 않는 연유도 알아듣겠다
아카시아꽃 핀 유월의 언덕은
곱기만 한데

'유월의 언덕'-노천명(盧天命 1911-1957 시인)

노천명은 황해도 해주 출신, 이화여전 영문과를 졸업하고 신문사 기자를 하면서 독신으로 살다가 47살에 죽었다. 시집은 '산호림' '사슴의 노래' 등이 있다.

위 시는 찬란한 유월에 고독한 자기 의 모순을 고백한 작품이다.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는 자연회귀가 더 강하다.

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가 / 나는 이름 없는 여인이 되고 싶소 // 초가지붕에 박넝쿨 올리고 / 삼밭에 오이랑 호박을 놓고 / 들장미로 울타리를 엮어 / 마당엔 하늘을 욕심껏 들여놓고 // 밤이면 실컷 별을 안고 / 부엉이가 우는 밤도 내사 외롭지 않겠소 // 기차가 지나가 버리는 마을 / 놋양푼의 수수엿을 녹여 먹으며 / 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 / 여우 나는 산골 얘기를 하면 // 삽살개는 달을 짖고 / 나는 여왕보다 더 행복하겠소
일제 때는 친일에, 한국전쟁 때는 좌익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른 노천명의 비극은 성격 탓일까, 아니면 역사와 현실의식의 박약성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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