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빛내는 정전

하루에도 열두 번씩 왔다 갔다 하고, 내 마음이지만 마음대로 잘 되지 않는 이 마음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마음 사용 설명서'로써의 원불교 〈정전〉은 그 첫 페이지 '개교의 동기'를 통해 우리 마음이 사용되는 현실과 사용할 때의 주안점을 간략하고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물질을 사용하여야 할 사람의 정신은 점점 쇠약하고, 사람이 사용하여야 할 물질의 세력은 날로 융성하여, 쇠약한 그 정신을 항복받아 물질의 지배를 받게 하므로, 모든 사람이 도리어 저 물질의 노예생활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그 생활에 어찌 파란고해가 없으리오."

그렇습니다. 대종사께서 대각의 안목에서 세상을 바라보니, 과학 문명의 발달로 물질적으로는 더 풍요해지고 생활은 편리해지고 있지만, 마음은 오히려 더 분주해지고 사람들은 물질적 소유에 대한 욕심이나 집착, 상대적 빈곤감으로 고통 받고 있었죠. 이 모든 고통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요?

편리해지고 좋아지는, 그래서 유혹이 많아지는 물질문명의 발달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어리석고 약해서 흔들리는 우리의 마음 때문입니다. 욕심과 집착이 클수록 고통스러운 법이죠.

남들이나 세상이 문제가 아니라 내 맘 속에 기대나 욕심이 많을수록 실망과 불평, 불만이 많고, 내 생각에 대한 집착이 강할수록 화가 많이 나는 겁니다.

두려움 또한 끝없이 좋아하는 것만 취하고 싫어하는 것을 피하고 싶은 우리의 욕심과 집착의 소산이죠.

결국 마음이 지혜롭지 못하고 힘이 없어서 욕심이 나고 집착하게 만들어 우리를 고통으로 이끌고 힘겹게 합니다. 이 괴로움을 끝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써 정신의 세력을 확장하고, 물질의 세력을 항복받아, 파란 고해의 일체 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려 함이 그 동기니라."

진리에 대한 바른 믿음과 그 믿음대로 마음과 삶을 사실적으로 단련하고 익혀서 지혜가 열리고 실천의 힘이 커지게 되면 어떤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낙원생활을 할 수 있게 되죠.

여기서 눈여겨 볼 점은 '광대무량한 낙원'입니다. 그 크기를 헤아릴 수 없이 넓고 큰 이 낙원은 특정인이나 어떤 특별한 계층만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가야할 행복한 곳이죠.

나만 또는 내 가족만 가는 낙원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미물 곤충을 포함한 모든 생명 또한 행복해야할 낙원인 겁니다.

이렇게 나를 포함하여 한 중생도 빠짐없이 고통받는 일체 모든 생명을 행복으로 인도하는 것, 이것이 바로 원불교의 존재 이유기도 하고 우리 마음 사용의 표준이기도 하죠.

한 마음을 쓸 때마다 우리는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어떻게 마음을 써야 나도, 다른 사람이나 생명들도, 지금도, 나중에도 행복할 수 있을까?'하고 말이죠. 그리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힘들고 괴롭거나 화가 나고 걱정과 두려움이 밀려온다면 마음이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그런데 어떻게 마음을 써야 나도, 남도, 지금도, 나중에도 행복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이것을 한마디로 답하기는 쉽지 않네요.

그래서 우리는 〈정전〉을 읽습니다. 몰랐던 것을 알아가고, 행복하게 마음 쓰는 법을 배우기 위해, 우리가 〈정전〉을 읽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밴쿠버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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