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

 

外修養者는 在於對治外境이니 對治外境者는 一 避境工夫니 初學之始에 當遠避外誘境界가 是也오 二 捨事工夫니 不緊之事라 煩雜之段을 當捨而不作이 是也요 三 依法工夫니 信受上乘解脫之法하야 求安心於眞理가 是也요 四 多聞工夫니 多聞偉人寬大實話하야 常存心於大局이 是也니라 做工之際에 行此四事하면 則自然外境平定하야 無有仵心之段하리니 古語에 云 樹欲靜而風不止라하니 風者는 外境也라 風止則樹靜하고 境治則心安이니라
외수양의 뜻은 바깥 경계를 대치하는 데 있다. 바깥 경계를 대치하는 데는 첫째, 경계를 피하는 공부이다. 처음 공부할 때는 마땅히 밖에서 유혹하는 경계를 멀리 피해야 한다. 둘째, 일을 놓는 공부다. 중요하지 않은 일과 번잡한 일을 마땅히 버리고 다시 짓지 않는다. 셋째, 법에 의지하는 공부이다. 상승의 해탈법을 믿어 받아서 진리에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넷째, 많이 듣는 공부이다. 위인의 관대하고 실다운 말을 들어서 항상 국이 큰 마음을 보존하는 것이 이것이다.

공부하는 때에 이 네 가지 공부를 수행하면 자연히 바깥 경계가 평정해져 거슬리는 마음이 없다. 옛 경에 말하기를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 하였으니 바람은 외경이다. 바람이 그치면 나무는 고요하고 경계를 다스리면 마음이 편안하다.

외수양은 바깥 바람을 멈추게 하는 공부이다. 그리고 바깥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공부이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음을 태산같이 하라 한다(부동함은 태산같이 하고) 모든 수행인이 마음이 경계에 움직이지 않는 공부를 하였음을 알리고 있다.

〈수심결〉에서는 외경의 바람을 팔풍이라 한다(〈수심결〉 34장). 이(利,이롭고 통해지고), 쇠(衰, 줄어들고 막히고) 칭(稱, 칭찬해 주고) 기(譏, 나무라고 원망하고 충고하고), 훼(毁, 헐고 상처 입히고) 예(譽, 기리고 칭찬하고 가상이 여기고) 고(苦, 괴롭고) 낙(樂, 즐거움)이 이것이다. 팔풍의 경계에 집착하여 강물에 잠긴 달이 되면 결코 허공 달을 찾을 수 없다.

수양은 철저히 적적성성하여 공적영지한 자성광명을 기르는 데 두고 있다. 경계에 집착된 망념을 쉬고 참다운 성품을 기르는 데에 세우고 용맹으로 정진하고 있다. 과거의 성현들이 모두 이 길을 닦았고 미래의 성현들도 이 길 따라 닦음을 가르치고 있다. 이 마음 달을 기르고 뭉치는 것을 영단을 뭉친다고 한다.

內修養者는 修養之意在於內修自心이니 內修自心者는 一 執心工夫니 念佛坐禪과 及一切時中에 常念執心不動하야 使吾心身으로 不得流放外境이니 如馴牛人之轡不捨 是也요 二 觀心工夫니 執心稍可면 則又放任自適 而但觀心所之하야 制其妄念而已니 如馴牛人의 捨轡觀牛하야 但制其錯行이 是也요 三 無心工夫니 觀心已熟이면 則又捨觀相 明寂自在 觀而無所觀 如馴牛人이 始入人牛不二之境하야 動靜一眞 是也니라
經云 心淨則一切淨하나니 心者는 包虛空萬像者也라 心一淨이면 則百千外境이 一切淸淨하야 境我無間하야 同成淨土니라


내수양은 수양의 뜻이 자기 마음을 안으로 닦는다는 뜻이다. 안으로 자기 마음을 닦는다는 것은 첫째, 마음을 붙잡는 공부이다. 염불이나 좌선할 때 또는 아무 때나 항상 마음을 붙잡아 부동함을 생각하여 내 심신으로 하여금 바깥 경계에 흘려 놓아 보내지 않는 것이다. 마치 소를 길들이는 사람이 고삐를 잡아 놓지 않는 것과 같다. 둘째, 마음을 보는 공부이다. 마음잡는 공부가 점점 익숙해지면 놓아 맡겨 스스로 나아가게 하되 다만 가는 마음을 보아서 그 망념을 제재할 뿐이다. 마치 소 길들이는 사람이 고삐를 놓고 소를 보고 다만 그 소가 잘못 가는 것만 제재하는 것과 같다. 셋째, 무심공부이다. 관심공부가 이미 순숙됐으면 또한 상을 보는 것도 놓아 버려 밝고 고요함을 자유로 하여 보되 보는 바가 없는 것이다. 마치 소 길들이는 사람이 비로소 사람과 소가 둘이 아닌 경지에 들어 동과 정이 하나로 참됨이 이것이다.

경에 이르기를 '마음이 청정하면 일체가 청정하다' 했으니 마음이라 하는 것은 허공만상을 포함한 것이라 마음이 한 번 청정하면 백 천의 바깥 경계가 모두 청정하여 경계와 내가 사이가 한 가지 정토를 이룬다.

내수양은 안으로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공부이다. 집심 관심 무심공부로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여기서 무심 공부는 적적성성한 자성광명에 마음을 길들이는 공부다. 허공과 같은 마음, 누구에게나 있는 자성은 다만 경계의 구름만 걷히면 해와 달이 나타남을 말한다. 해와 달과 같은 밝음을 명덕이라 하고 자기 성품이라 한다.

외경에 흔들리지 않는 공부는 외수양법으로 사리연구 작업취사로 하여야 함을 의미한다. 안으로 집심 관심 무심 공부로 염불과 좌선과 경계에 끌리지 않는 공부와 마음을 살펴 청정심에 합하는 공부를 하여야 함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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