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함과 개성으로 무장한 동네책방의 역습

▲ 충북 괴산에 2011년 문을 연 '숲속작은책방'은 책을 좋아하는 누구나 꿈꾸는 로망이 실현되어 있는 동네책방이다.
한때 사람들이 책방에서 책을 사던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다. 서점 주인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픈 책도 진열대에 올렸다. 학생들은 하굣길에, 직장인들은 퇴근길에 책방에 들러 책을 샀다. 주말이면 가족들이 함께 책을 고르는 풍경도 낯설지 않았다. 책방은 동네 소식이 오가는 사랑방이었고, 아이들의 놀이터였으며, '이곳이 아닌 저곳'을 꿈꾸게 하는 보물창고였다. 누구나 가방에 책 한권쯤 들고 다녔던, '책 읽기 좋은 시절' 이야기다.

좋은 시절은 갔고, 서점은 사라졌다.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예견됐던 이 재앙은 대형서점의 등장과 온라인서점의 활성화, 책 할인제 등에 의해 가속화되며 서점을 줄줄이 문닫게 만들었다. 1994년 전국에 5683개이던 서점수는 2007년 2042개, 2011년에는 1752개로 줄었다. 서점의 실종은 독서율 감소와도 맞물렸다. 1994년 성인 연평균 독서율은 87%였지만, 2002년 72%, 2010년에는 65%까지 낮아졌다. 성인 10명 중 3명은 한 해 동안 단 한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는 의미다.

동네에 책방이 없으니 책을 읽지 않고, 책을 안 읽으니 서점도 출판사도 사라지는 시대, 동네책방들이 다시 생겨나고 있다. 규모나 가격 면의 경쟁력이 아닌, 특별한 테마와 체험, 세상 하나뿐인 공간들과의 결합으로 다시 돌아온 '동네책방의 역습'이다. 이 역습을 이끄는 책방 중 하나인 '숲속작은책방' 백창화·김병록 부부는 충북 괴산군의 한 마을에서 동네책방의 대안을 직접 실천하고 있다.

2011년 문을 연 '숲속작은책방'은 책을 좋아하는 누구나 꿈꾸는 로망을 집약해 놓았다. 낮은 울타리를 지나 책방에 들어서면 높은 천장 끝까지 책이 가지런히 꽂혀있다. 각양각색의 꽃이 핀 정원에도 책이 가득한 오두막책방과 해먹 독서대가 있다.

소음이라곤 없는 깊은 산 중의 책방, 과연 누가 여기까지 올까 싶어도 한달 평균 200명이 이곳을 찾는다. 마을공동체와 함께하는 연대를 보기 위해서도 오지만, 책과 결합한 다양한 모임이나 체험을 위해서도 오는 것이다.
▲ 숲속작은책방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2층 '앨리스의 다락방'은 숙박객들을 위한 공간. 침대나 옷장보다도 벽면마다 가득한 책이 먼저 반겨주는 다락방은 조용히 책을 읽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열려있다. 애시당초 일반민박이 아닌 책방민박(?)으로 기획된 공간, 부부는 '면접 아닌 면접'을 통해 다락방을 연다. "전화로 문의가 오면, 책을 좋아하거나 좋아할 것이거나, 혹은 조용히 책 읽고 싶은 분들만 받는다고 말씀드립니다. 그러다보니 주로 아이가 있는 가족이나 독서동아리에서 많이 오시지만, 그냥 조용히 쉬고 싶은 분들도 찾아오시지요."

둘째 토요일에 열리는 '토요 북클럽'에도 발길이 이어진다. 각자 음식을 싸와서 나누고 시작하는 북클럽은 책 읽는 시간이 따로 있어 미리 책을 읽어오지 않아도 된다. 이 밖에도 딱 책 1권이 들어가는 '내 인생의 책꽂이' 목공과 손톱만한 미니북을 직접 만드는 공예는 아이들에게 인기만점. 체험을 하며 학생들과 책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부부는 늘 설레며 준비하고 진행한다. "책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도 있어요. 그런 친구들도 책방에 와서 책에 대한 호감을 지니고, 한권쯤은 읽어볼까? 하는 생각을 가져갔으면 하는 바람이죠."

이런 아이디어는 부부가 사재를 털어 운영했던 '숲속작은도서관'의 10년 세월에서 비롯됐다. 건강한 어린이 책문화를 위해 마을도서관을 운영했던 부부는 장서 1만권을 세상과 공유하겠다는 의지로 괴산에까지 내려왔다. 도서관에서 책방으로 키를 돌린 부부는 '동네책방'의 대안을 찾기 위해 이탈리아와 스위스, 프랑스, 영국으로 유럽 동네책방 기행까지 떠난다.

"어려움 속에서도 여전히 건재하며 오히려 힘을 내는 책방들을 직접 보고 싶었다"며 떠난 여행을 통해 부부는 가능성을 배웠다. 그 결과를 펴낸 책이 바로 〈유럽의 아날로그 책공간〉으로, 도전하는 동네책방들이 많은 힌트를 얻는 책이다.

조금씩이지만 부지런히 생겨나는 동네책방들. 저마다 각양각색 개성과 특별함으로 무장해 우리 곁으로 파고든다. 서울 홍대의 '땡스북스'처럼 카페와 책방을 겸한 트렌드는 이미 많이 확산되어 있다.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는 상암동 '북바이북'도 국내 유일, 독립출판이 주목을 받으며 서울 '유어마인드', '헬로 인디북스', 대구 '더폴락', 대전 '도어북스' 같은 독립출판 전문 서점도 인기다.

특정 장르를 파고든 뚝심있는 동네책방도 있다. 연남동 '피노키오'는 그래픽 노블과 외국그림책의 메카로 인정받으며, 전주 '조지 오웰의 혜안'은 인문학 전문, 서울 '일단멈춤'은 여행 서적 전문 책방이다.

이들의 큰형님 격인 '숲속작은책방' 백창화·김병록 부부는 이같은 동네책방 후배들을 환영하다 못해, 발품을 팔아가며 취재까지 했다. 전국 독특한 동네책방 68곳을 담아 펴낸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를 통해 더 많은 동네책방들이 생겨나고 유지되기를 바란 것이다. 동네책방과 책읽는 문화가 결국 출판계에 도움이 되고, 그래야만 인생의 자양분이 되는 더 좋은 책들이 많이 나올 것이라는 희망에서다.
▲ 숲속작은책방의 책들에는 책방 주인의 추천코멘트도 붙어있다.
"동네책방의 주인은 책을 파는 것만이 아니라 추천하는 역할도 하죠. 그래서 여기 있는 책들은 모두 우리가 읽고, 추천코멘트를 붙여놓기도 해요."

마지막으로 〈원불교신문〉 독자들을 위한 추천 도서를 물었다. '작가와 함께 실크로드를 직접 걷는 느낌'이라는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와 '작은 섬에 들어가 공동체를 이뤄가는 젊은이들의 이야기' 아베 히로시·노부오카 료스케의 〈우리는 섬에서 미래를 보았다〉를 추천하며 "다시 책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고 부부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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