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무출신은 철저한 공인'
강한 신성과 희생적인 공심
원광대 발전 혈심 혈성 공도자

곧은 성품의 대 공심가로 전무출신의 정신으로 공사에 임하며, 원광대학교 발전을 위해 혈심 혈성으로 헌신한 실산 오해인(實山 吳海仁)대봉도가 7월28일 거연히 열반에 들었다. 실산 대봉도는 원기42년 보화당 외무를 시작으로, 교정원 재무부 이재과장, 원광대학 관리과장, 재무처장, 총무처장, (주)원광제약 사장, 재단법인 영모묘원 이사장으로 봉직했다.

열반소식을 접한 경산종법사는 "실산 대봉도는 '회상을 믿고 성의를 다하자'는 정산종사의 부촉을 받들어 부지런하고 진실하며 순일무사한 공심으로 빛나는 생애를 살으셨다"며 "선진님의 열반에 우리 대중은 슬픔을 가눌 길이 없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전했다.

경산종법사는 "철저한 공도정신과 특별한 행정역량으로 알뜰하고 꼼꼼하게 초기 교단의 어려운 살림을 꾸려 오셨다"며 "특히 상상할 수 없는 고초를 겪으면서도 불철주야 원광대학교의 발전에 정신·육신·물질로 소리 없이 헌신적인 삶을 바치셨으니, 실산 대봉도의 강한 신성과 희생적인 공심은 창립기 교단의 힘이요 생명이다"고 추모했다. 경산종법사는 "찬연한 공적을 쌓으신 실산 대봉도의 생애는 교단 만대의 거울이 되고 발전의 초석이 되어 그 복조가 한량없을 것이다"고 심축했다.

출가대표로 백인혁 교무는 고사를 통해 "6.25 전쟁의 혼란 속에 교단의 명을 따라 유일 정미소로, 수계농원으로 숨 쉴 틈 없이 바쁜 공사를 수행하는 가운데, 머리와 눈썹이 토탄 불꽃에 타들어 가고, 정미소에서 발생한 불의의 화재로 심한 화상을 당하면서도 오직 교단과 공사가 우선이셨다"며 "선진님의 일생은 스승의 말씀을 따르고 공심으로 일관하는 교단의 주인이고 천하의 공인이셨다"고 회상했다. 백 교무는 "원광대학교 초창기, 그 간난했던 학교 살림의 실무를 맡아 한 평 부지를 매입하고 비품을 장만하며, 신축에 필요한 건축자재 하나하나 구입할 때에도 공금을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셨다. 한 푼이라도 절약하기 위해 상대와 씨름하기를 마다 않으셨고 눈이 오는 겨울이면 학교 보일러를 살피고, 한 여름 장마철에는 삽을 들고, 한 밤중에도, 이른 새벽에도 학교로 달려가 교정 곳곳을 살피며 공인으로서의 사표가 되어 주셨다"며 열반의 슬픔을 고했다.

퇴임 이후에는 수양과 적공에 더욱 정성을 다하며 '전무출신은 철저한 공인이다. 사사로운 사람은 될 수 없다'는 유훈을 남기고, 최후의 순간까지 공인의 모습을 잃지 않았던 실산 대봉도는 노환으로 원요양병원에서 열반에 들었다.

그의 세수는 84세, 법랍은 69년 3개월, 공부성적 정식법강항마위, 사업성적 정특등 6호, 원성적 정특등으로 원불교교단장에 해당돼 장례의식이 거행됐다. 종재식은 9월14일 오전11시 중앙총부 반백년기념관에서 거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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