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성에는 본래 남쪽과 북쪽이 없나니

금강경은 대한불교 조계종의 소의경전이다. 소의 경전이란 종교가 신앙과 수행 및 지향할 바 실천 정신의 근본으로 삼는 경전으로 각 종교에는 가르침의 근본 사상과 정신을 담고 있는 경전이다. 원불교의 정전·대종경, 불교의 금강경·화엄경·법화경, 기독교의 신약성서·구약성서, 유교의 논어·맹자 도교의 음부경·옥추경, 이슬람교의 코란, 천도교의 동경대전 등을 들 수 있다.

불교의 경우 종파가 다를 경우에 소의경전도 다르다. 화엄종의 소의경전은 화엄경, 천태종의 소의경전은 천태경이다. 대한불교 태고종은 종헌에 "본 종의 소의경전은 금강경과 화엄경으로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오늘날 동양의 정신이며 참된 인간의 근원적인 지혜로서 인류의 지적 유산으로 주목되고 있는 선불교(禪佛敎)는 9세기를 전후하여 중국 당나라 시대를 중심으로 활약한 실천불교의 선구자인 선승들의 뛰어난 예지로써 종래의 전불교(全佛敎)를 선(禪)의 실천으로 새롭게 종합한 조사선의 불교사상을 말한다. 이러한 선불교의 특징은 일반적인 언어나 문자로는 깨달음의 경지인 진리의 세계를 설명할 수 없다고 하는 '불립문자'나 부처님의 정법은 경전에 문자로 기록된 것 이외에 마하가섭에게 가만히 마음으로 심법을 전하였다고 하는 '교외별전'과 '이심전심' 그리고 자기의 참된 불성을 깨달아 각자가 부처를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견성성불' 이라는 잘 알려진 명구(名句)들이 대변하고 있다. 선불교의 실천 사상은 각자 자기의 성스러운 불성을 깨닫고 불도를 이루어 인격완성을 이룩하는데 있다고 하겠다.

이렇게 대한불교 조계종은 화두를 도를 깨치는 것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단어가 '불립문자 직지인심'이다. 그런데 문자로 된 금강경을 소의 경전으로 하고 있다. 앞뒤가 맞지 않게 보이는데 여기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역사적 이유이다. 중국선종의 본격적인 시조는 육조 혜능(638~713)이라 볼 수 있다.

금강경과 육조혜능

혜능은 당의 승려로서 광동성 신주 출신이다. 성은 노이며 흔히 육조대사·조계대사라 부른다. 일자무식 혜능은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다. 뒤에 남해로 왔는데, 가난하고 어려워 시장에서 땔나무를 팔아서 살았다. 어느 날 한 손님이 나무를 사고는 여관까지 가져다 달라 하였다. 손님께 가져다 주고 나오다가 다른 손님이 경 읽는 것을 보았다. '응무소주이생기심'이라는 경문을 한 번 듣자 곧 마음이 열려 깨달았다. 그리하여 그 손님에게 물었다.

"무슨 경을 읽습니까?""금강경이다.""어디에서 오셨기에 이런 경전을 가지고 있습니까?"

"나는 기주 황매현의 동선사에서 왔다. 그 절은 오조 홍인대사가 교화를 하시는데, 문인이 천 명이 넘는다. 거기에서 이 경을 받았다. 대사께선 대중에게 권하기를, 금강경만 지니면 곧 스스로 본성을 보아 곧장 깨닫게 된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나자 오래된 인연이 있었서인지, 그 손님이 은 열 냥을 주면서 노모의 옷과 양식에 충당케 하고는, 곧 황매를 찾아가 오조께 인사하라고 했다. 혜능은 노모에게 작별을 고하고 곧장 황매로 향했다.

오조께 인사를 올리자 오조가 물었다. "그대는 어느 지방 사람이고, 무슨 물건을 구하려 하는가?"

"저는 영남 신주의 백성입니다. 먼 곳에서 와 스님께 절을 올리는 것은, 오직 부처되기를 바랄 뿐이고 다른 물건을 구하러 온 것은 아닙니다.""그대가 영남 사람이라면 오랑캐인데,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겠는가?""사람에게는 남쪽 사람과 북쪽 사람이 있지만, 불성에는 본래 남쪽과 북쪽이 없습니다. 오랑캐의 몸과 스님의 몸이 같지 않지만, 불성에 무슨 차별이 있겠습니까?"

오조는 계속 말씀을 나누고 싶었지만 대중이 곁에 있음을 보고는, 대중을 따라서 일을 하라고 했다. 혜능이 말했다.
"제가 스님께 여쭙습니다. 저의 마음은 늘 지혜를 내어 본성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이것이 바로 복전입니다. 스님께서는 무슨 일을 하라고 시키십니까?"

오조가 말했다. "이 오랑캐는 근성이 매우 날카롭구나! 너는 더 이상 말하지 말고 헛간으로 가거라."
혜능이 물러나 뒷마당에 이르니, 한 행자가 있다가 땔나무를 쪼개고 디딜방아를 밟는 곳으로 보냈다. 하루는 홍인대사가 문하생들을 다 불러 말했다.

"너희들은 각기 반야의 지혜를 써서 게송 한 수씩을 지어 나에게 가져오거라. 내가 너희들의 게송을 보고 만약 큰 뜻을 깨친 자가 있으면 그에게 가사와 법을 부촉하여 육대 조사가 되게 하리라."

사람들은 물러나와 의논했다.

"신수(神秀) 화상은 우리들 중의 대사형이므로 굳이 우리들이 게송을 지어 큰스님에게 바칠 필요가 없다. 신수 사형이 법을 얻은 후에 육조가 되면 되지 않겠는가?"

신수는 혜능보다 먼저 오조 홍인의 문하로 들어와 박학다식하기로 유명한 사람으로 혜능에게는 대선배라 할 수 있다. 신수는 이것을 알고 심한 부담감을 느껴 번민을 하다가 사람들이 다 잠이 든 삼경(三更)에 남쪽의 복도에 몰래 게송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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