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나의 귀를 의심할 만큼 깜짝 놀랄 만한 특별한 이야기를 북쪽 인사로부터 들었다. 그 북쪽 인사는 제7차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ACRP) 총회(2008, 마닐라)를 앞두고 열린 ACRP 집행위원회에 참석한 박문철이었다.

회의를 마치고 남북 종교인 대표들이 마닐라 중심가를 함께 걷다가 어느 노천카페에서 걸쭉한 망고 주스를 마시며 즐겁게 담소를 나누던 중이었다. 그때 박문철이 나를 보며 대뜸 '원불교는 우리 천도교와 형제종교입니다'하는 것이다.

학창시절 당시의 대산종법사로부터 간간히 '천도교는 우리와 형제의 연을 맺은 종교'라는 법문을 받들었지만, 막상 북쪽의 인사로부터 그것도 먼 이국땅에서 들으니 반갑고도 놀라운 일이었다. 남녘도 아닌 북녘 땅에서 어떤 연유로 그렇게 인식하게 됐느냐고 되물으니 고 최덕신 교령의 부인인 류미영 여사로부터 늘 들었다는 것이다.

원기57년(1972) 10월1일 당시의 천도교 최덕신 교령이 원불교 중앙총부를 방문하여 대산종법사와 마주하는 역사적인 일이 있었다. 이때 대산종법사는 최 교령에게 '웃어른들 뜻이 같으니 우리가 악수하고 이 나라 통일에 합력하며 나아가서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기 위해 노력하자'는 메시지를 전해 내 마음이 무척 흐뭇했다. '우리 오늘을 기념하고 종교계의 융통과 이 나라 통일과 세계 평화를 위해서 다 같이 박수로 환영합시다'라고 하며 형제의 정을 나눴다.

그 후 대산종법사는 원기59년(1974) 8월14일 천도교 2대 교주인 해월신사(海月神師)의 제111주년 지일(地日)기념일에 최 교령의 초청에 응하여 천도교 중앙총부를 방문하고 서로 호형호제하며 형제의 정을 돈독하게 다졌다. 대산종법사는 천도교가 먼저 났으니 형님이라 부르고 생일이 한 달 늦은 최 교령은 대산종법사가 먼저 태어났으니 형님이라 불렀다.

종교 간에 이렇듯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던 최 교령은 1976년 미국으로 건너가 반유신 활동을 하다가 1986년 부인과 함께 월북하여 조선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들 요직을 거친 후 월북 3년 만에 작고했다. 지금은 그 부인인 류미영 여사가 남편의 뜻을 이어 조선천도교청우당을 이끌고 있다. 북쪽 천도교 서기장으로 남쪽 인사들과 두루 관계를 맺었던 박문철은 몇 년 전 지병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오는 8월14일은 대산종사가 천도교를 방문한 지 41주년이 된다. 대산종사가 말씀한 '종교계의 융통과 이 나라 통일과 세계 평화를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본다.

<한국종교인평화회의 남북교류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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