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경 21장

우리는 모두가 사은(四恩)의 텃밭을 가지고 있다. 누구에게나 그 은혜의 밭이 주어졌건만 심고 가꾸는 것은 각자 각자에게 달려 있다.
근본적인 은혜를 이해한다면 이 우주는 은혜 덩치이다. 씨앗만 제대로 뿌려서 가꾼다면 그 결실은 무한대이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크고 한량없이 은혜가 내리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의 무대는 인과의 원리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알든 모르든 은혜를 받기만 하는 데 그쳐 버리면 배은의 결과가 올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인과는 서로 거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은혜를 베푼다는 것은 특별한 사람만이 해야 할 일이 아니고 당연히 누구나 받고 있는 은혜에 상당하게 갚는 것이 도리이며 당연지사이다.

그래서 인생에 있어 최고의 가치이며 보편윤리는 보은(報恩) 하는 데 있는 것이다.

조그마한 은혜는 알고 갚기가 쉽지만 크고 무한량한 은혜는 깨닫기도 어렵고 갚기는 더더욱 어려워서 자칫 내 인생과는 무관한 것처럼 착각을 하면서 자기 눈앞에 이익만 좇아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중생들의 삶이다.

끊임없이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열심히 살기는 하지만 이 우주의 원리인 근본적인 은혜나 인과의 이치를 모르거나 알아도 욕심으로 구한다면 구하면 구할수록 멀어지고 죄악을 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이 중생들의 당연한 삶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일시적으로 보았을 때 영리하게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허사가 되는 일이 많다. 그러나 불보살들은 그 원리를 알고 행하므로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힘쓰지 않아도 무위이화로 무한량한 은혜를 끌어올 능력이 있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변하지만 그 가운데 변치 않는 진리가 곧 불생불멸이며 인과의 이치이다.

과거의 시대는 어둡고 상극의 시대이므로 그 진리를 터득하고 가르치기가 어려워서 인생은 고해(苦海)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상생의 시대이고 인지가 높아져서 갈수록 밝고 은혜로운 세상이 되어 지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나 세상이 가치관이나 인생관이 정립되지 않아서 혼란스럽고 부도덕하게 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대종사는 무아봉공으로써 우리의 나아갈 바를 가르쳐 주었다.

세세생생 우리 갈 길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 이 같은 행복자가 어디 있겠는가. 나를 놓아버리고 정신 육신 물질로 무조건 베푸는 것이다. 그것이 신앙이며 수행이다.

과거와 같이 깨친 사람만이 가질수 있는 인품이 아니라 대종사는 누구든지 보편적으로 다 갖출 수 있도록 신앙과 수행으로 줄잡아서 불보살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우인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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