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승구 신부/한국천주교 서울대교구 장위1동 선교본당

28일이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500일이 되는 날이다.
참사가 일어나면서 사람들은 예견했던 것일까? 누구라 할 것 없이 사람들은 바로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표어를 사용했다. 마치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염두에라도 둔 듯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500일이 지난 지금 세월호 참사를 잊은 것처럼 행동한다. 사실 잊은 것이 아니라 감추는 것인지도 모른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가라앉는 배에 갇혀서 아주 서서히 죽어갔다는 사실이 너무 끔찍하고, 이를 바라보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자괴감에 그 모든 일을 없었던 일로 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잊고자 하여도, 없던 일로 여기고자 하여도 그리 할 수 없는 것이 세월호 이야기이다. 우리 국민 모두의 아픈 기억으로 아주 깊게, 그리고 강력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세월호 이야기인 것이다. 세월호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이제 그만하자'며 손사래를 치는 이들로부터 세월호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눈물부터 주르륵 흘러내린다는 이들에 이르기까지 그 거세고 어울리지 않는 반응은 세월호 이야기가 결코 잊거나 없앨 수 없다는 반증이라 할 수 있다.

언제부턴가 세월호를 자신의 일상으로 만든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수습과 인양, 그리고 진상 규명을 위해 서명을 받고, 피켓팅을 하고, 리본을 만들어 나누는 모임이 국내외를 아울러 거의 200여 곳 가까이에서 정기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이렇게 세월호는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는 각 종단별로 지속적인 종교 문화 행사가 열리고 있다. 그밖에도 많은 곳에서 예배와 예불, 법회 그리고 미사 등 형식과 이름은 각각 다르지만 세월호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아직도 구조되지 못한 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원래 기억은 종교의 특성이다. 창시자를 기억하고 창시자의 가르침을 기억하라고 한다. 그리고 그 기억에 따라 오늘을 사는 것이 종교의 본질이다.

그 기억의 기능이 없다면 종교는 그 본질을 잃고 만다. 우리 믿음의 기본이 되는 분이 오늘 이 자리에 있다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판단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되살리고 기억하여 행동하는 것이 참된 종교인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아픔과 슬픔인 세월호를 기억의 자리에 두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종교의 모습이다. 아픔에 대한 기억과 성찰은 종교가 이 사회에 봉사하는 가장 합당한 방법이며 존재이유이다.

"이제 4월은 내게 옛날의 4월이 아니다. 이제 바다는 내게 지난날의 바다가 아니다. 눈물을 털고 일어서자고 쉽게 말하지 마라. 하늘도 알고 바다도 아는 아픔이었다. 화인처럼 찍혀 평생 남아있을 아픔 죽어서도 가지고갈 이별이었다." 도종환 선생님의 글에 가수 백자님이 곡을 붙인 화인이라는 노래이다.

세월호 500일을 앞두고 '4월16일의 약속 국민연대'에서는 화인-다짐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2014년 4월16일의 세월호 참사는 온 국민에게 불도장으로 찍혀 있다. 화인은 지울 수 없는 자국이다. 지우려 해도 또 다른 자국을 남길 뿐이다. 있는 자국을 지우려 할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국을 품고 또 다른 참사를 막고 안전한 대한민국을 이루어야 한다는 시대의 요청을 국민 모두가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그 자리에 이 우주와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는 종교인들의 기억과 성찰이 소중한 자리를 차지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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