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이 본격적인 대북지원 사업을 하게 된 것은 1995년 유엔(UN)이 대북 긴급지원을 요청하면서다. 당시 공산권의 몰락으로 북한의 식량난은 가중됐고, 환경적인 어려움은 국가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 이에 국제적으로 북한 돕기 활동이 전개되면서 남한의 종교계와 민간단체들이 대북지원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것이다.

교단도 그때부터 대북지원 사업을 시작했으니 20년이 된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교단의 대북지원 사업은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첫 대북 지원 사업은 1995년 강남교당(당시 박청수 교무)에서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전달된 북한 수재민 돕기 성금 기부다. 이후 원불교은혜심기운동본부, 강남교당, 봉공회, 여성회에서 2001년까지 해마다 유엔과 대한적십자사, 우리민족서로돕기 등을 통해 식량과 성금, 감자, 옥수수, 의류, 간장, 영양제, 비료, 의약품, 분유, 기저귀, 담요 등을 지원했다.

또한 2000년 12월 김일상 교무(한민족한삶운동본부장)와 정명중 교무(은혜심기운동본부장)가 북경에서 조선불교도연맹 중앙위원회 위원 3명을 만나 겨울의류 한 컨테이너를 보내기로 하고 원불교와 공식적인 접촉을 터 갈 것을 논의했다.

2001년 6월 6.15남북공동선언 1주년 기념 민족통일 대토론회에서 대북 지원을 위한 직접 지원 창구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에 2001년 8.15한민족대회에 원불교 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조선불교도 연맹'과 연계하여 지속적인 대북 지원사업을 하기로 합의하고 이혜정 교정원장이 조선불교도연맹 중앙위원회 위원장(박태화 대선사)과 의향서를 교환했다.

2001년 9월 통일부에 정식으로 원불교 명의의 대북지원사업자 신청을 하여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대북지원사업자 지정 이후 지원 활동은 북한의 어려운 실정 속에 고통이 더욱 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어린이와 여성을 대상으로 조선불교도연맹과의 협의를 통해 진행됐다. 2003년까지 의류와 분유, 담요 등이 지원이 되었으며, 2003년 평양에 빵공장이 설립되고부터는 북한의 어린이들에게 빵을 만들어 공급해 줄 수 있도록 매달 밀가루 40톤을 2006년까지 지원했다. 또 어린이들 점심을 해결해주는 국수 생산을 위한 공장 지원에 합의를 하고, 2011년까지 매달 30톤의 밀가루와 분유, 기저귀천 등의 어린이용품이 지원됐다.

그렇게 지속됐던 지원 사업은 2011년 천안함 사건으로 인하여 중지됐다. 그리고 현재까지 더 이상의 물품이 북쪽으로 올라가고 있지 않고 있다. 정세의 흐름이 호전되어 다시금 지원 사업이 재개 될 것을 항상 기대하며 현재도 매년 1 ~ 2회 중국에서 조선불교도연맹 인사들과 만남을 이어오고 있지만, 연평도 포격, 대북 전단 발송, 지뢰 매설, 휴전선 포격 등으로 좀처럼 관계 개선이 어려워 보인다.

가족이 갈라지면 다시 만나 그 정을 나누는 것이 인간으로써 가장 근본 도리일 것이다. 우리의 조상님들은 서로 하나였음을 명심하고 아직까지도 이렇게 서로 싸우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에 부끄러운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70년이라는 시간 동안 서로 갈라서고 있는 남과 북이 작은 소통과 자유로운 움직임 속에 통일의 길이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통일 방법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교정원 공익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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