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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공은 나를 새롭게 하는 힘
봉공은 나를 새롭게 하는 힘
  • 홍지영 교도
  • 승인 2015.09.04
  • 호수 176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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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 신앙생활이

온가족 교당으로 이끌어

봉공하는 삶에 눈떠


나는 결혼과 동시에 시부모와 함께 생활하면서 원불교에 입교하게 됐다. 입교하기 전에는 원불교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하여 입교 후 몇 년간은 행사 교도로서 4축2재에만 겨우 참석하는 정도였다. 나에게 원불교라는 주춧돌을 놓아준 분은 시어머니이다. 시어머니는 조용하면서도 인자하고 모범적인 모습을 늘 내게 보여주었다. 평소에는 다리가 많이 불편하여 저녁이 되면 힘들어하면서도 교당에 갈 때는 나비처럼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런 시어머니가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열반했다.

지금은 장례식장에서 모든 일을 치르지만 그 당시에는 집에서 열반식을 진행했다. 3일상을 치르는데 정말 많은 분들이 다녀갔다. 내가 특히 감명을 받은 것은 일심으로 독경하는 교도들의 모습과 그 소리였다. '원경회'라 불리는 독경단의 독경소리는 나를 교당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게 만든 계기가 됐다. 그 덕분인지 나도 차후에는 원경회(독경단)에 가입하여 독경을 통해 교화하고자 하는 서원이 생겼다. 시어머니의 49재를 계기로 교당 교무는 나에게 "시어머니에게 효도하는 길은 그 자리를 채우는 길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에 수긍이 됐다.

종재가 끝난 후, 교무는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내 딸에게 성가반주를 부탁했다. 그 덕분에 교도의 4종 의무 중 하나인 법회출석을 온 가족이 몇 년간 무결석으로 지키는 알뜰한 일원가족이 되었다. 오로지 딸의 성가 반주를 위해서 다녔던 것이 차차 재미를 붙이자 원불교를 하나하나 알아가는 재미가 생겼다. 딸 덕분에 일요일은 교당 가는 날로 정해졌고 시댁식구를 만나는 날이 되었다.

그즈음 배내훈련원 정기훈련에 참석했는데, 장덕훈 교무가 교전과 친해지는 법을 알려주어 법문을 사경하기 시작했다. 노트에 한번 반, 인터넷 법문사경 5번을 완성했다. 지금도 진행 중이다. 처음에는 글로만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채워갔지만 하면 할수록 대종사의 훈기가 느껴졌다. 아! 나도 무언가를 하고 있구나. 유념으로 행동을 하면 나에게 변화를 느낄 수 있는데 무념으로 행동을 하면 도로 제자리에 돌아가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어느 날, 막내 동생이 나에게 빨간 경차를 준다는 연락이 왔다. 기분 좋게 받았는데 장롱면허증을 가진 나로서는 1년간 마당에 전시해 놓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교구 봉공회 활동을 하면서 차가 필요한 것임을 절실히 느꼈다. 용기를 내어 남편에게 운전을 하겠다고 사정했지만 남편은 경차이기에 더 위험하다고 허락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무식한 자가 용감하다고 남편과 상의도 하지 않고 도로연수를 시작했다. 그 덕분에 봉사활동을 즐겁게 다닐 수 있게 됐다.

어릴 적 막연하게나마 결혼 후 아이들 키워놓고서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차가 그런 나의 꿈을 가능하게 해줬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 현장을 찾아가 빨래봉사, 간식봉사, 독경을 다닐 때도 차는 효자역할을 해줬다. 세월호 봉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에 겪었던 그때의 기억은 잊을 수가 없다. 봉사자들끼리도 서로가 얼굴을 마주할 수가 없었고, 말을 건네는 것조차도 조심스러웠다. 거의 대부분 봉사 부스가 철수되고 몇몇 단체만이 남아있을 때였다. 광주전남교구 봉공회장이 3달째 부스를 지키며 스티로폼 위에서 숙식하고 있었다. 우리는 빨래를 수거해서 세탁한 뒤 말려서 유가족들에게 전달했다. 그러자 유가족들이 필요한 것이 있으면 원불교 부스를 방문해 반찬도 얻으러 오고 상담도 해왔다. 그 뒤에는 광주전남교구 봉공회장의 상 없는 노력이 있었다. 무아봉공의 결실이었고 은생어해의 결과였다. 안타까웠던 것은 그때 끝까지 함께하고자 했으나, 부득이하게 8월 1일자로 원봉공회 부스도 철수하게 됐다. 하지만 그때의 경험이 내게는 봉사자로서의 자세를 배울 수 있었던 큰 기회였다.

그 외에도 아시아공동체학교 급식봉사, 헌옷수거, 서생텃밭 가꾸기, 남부민 차상위 계층 반찬 나눔 등 나는 언제나 빨간 자동차와 함께 다녔다. 어느 순간에는 아상으로 가득 찬 나를 발견할 때도 있었고, 어느 때는 내가 미쳤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열심히 했다. 타자녀교육하라는 대종사의 말씀을 실천한다는 마음으로 임했다. 또 한편으로는 나의 바깥 활동에도 불평하지 않는 남편과 아이들의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항상 은혜로 생각하고 감사하며 더 열심히 일했다.

그때마다 교무가 "참말로 좋습니다. 참말로 잘했어요"라고 기운을 북돋아주어 힘이 솟았다. 교무와 함께 감사생활을 하다보면 원망심도 사라지고, 은혜를 발견할 수 있었다. 늘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마치고 기도 속에 살게 되고, 일요일이면 법 동지 만나는 즐거움으로 교당에 다녔다.

교당에서는 봉공회장으로, 교구에서는 원봉공회 총무로서, 항상 넉넉한 마음과 넉넉한 언행을 가지라는 정산종사의 법문을 가슴에 새기며 실천하고자 노력하니 그것이 삶의 행복이 됐다.

<전포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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