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6년 2월초, 평양시 강남군 당곡리협동농장에는 매서운 칼바람을 맞으며 남측 대표단과 협동농장 관리일꾼들이 협동농장 곳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강남군은 예로부터 바람이 세기로 유명하다. 이들은 벼농사 협력사업을 위한 농지, 시설채소를 위한 온실 부지, 마을주민들이 거주하는 살림집, 소학교와 유치원, 진료소, 마을길 도로를 둘러보며 사업 추진을 위한 기초조사에 들어갔다.

이렇게 최초로 북측의 협동농장에서 남북협력사업이 시작됐다. 남북은 협동농장에서 진행하는 종합적인 협력사업을 갑론을박 끝에 '협동농장 현대화사업'이라 부르기로 했다.

협동농장은 북측 농촌에서 농업생산의 기본 단위이며 최말단 행정단위이다. 따라서 북측의 농업생산성 증대를 위해서는 협동농장을 어떻게 개선해 나갈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그 개선 방향은 북측이 결정할 문제다. 그런데 남측에는 농촌개발이나 농업생산 분야의 전문가들이 많다. 이들이 남북협력사업을 통해 경험을 나눈다면 북측이 협동농장의 개선방향을 찾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당곡리협동농장에서 협력사업은 4가지 분야로 나눠 진행했다.

첫째는 벼농사 협력사업이다. 농지 100ha에서 남측 종자를 이용해서 남측농법으로 농사를 지어보기로 한다.

둘째는 온실(비닐하우스)채소 협력사업이다. 1ha(3,000평)의 온실을 설치하여 남북 종자를 모두 이용하여 온실채소 재배를 실험해 본다.

셋째는 농업 기반구축이다. 마을길을 포장하고 농기계수리소를 개보수하기로 했다. 현대적인 정미소도 신설하기로 했다.

넷째는 주민 복지사업이다. 당곡리협동농장에는 유치원, 소학교와 중학교가 각 1개씩 있다. 또 작업반마다 작은 탁아소가 있다. 진료소, 리(里) 탁아소는 새로 짓고 유치원과 학교는 개보수를 했다.

낡은 의료장비만 몇 개 덩그러니 있는 진료소는 조그맣게 신축하고 기초의료장비를 설치했다. 살림집(주택)도 개보수하거나 신축하는데 남측이 힘을 보태었다. 사업추진 방식은 남쪽의 일방적인 지원을 지양하고 남쪽이 기술과 자재를 지원하고, 인력과 시공 및 관리 등은 북쪽이 책임지는 방식이다. 북쪽에서도 자체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물자는 동원했다. 마을길 포장의 경우 남측에서 시멘트와 철근을 제공하고 농장에서는 모래와 자갈, 노동력을 투입했다.

사업은 2006년부터 2008년까지 3년간 이어졌다. 그동안 50여 회에 걸쳐 남측사람 600여 명이 당곡리협동농장을 방문했다. 벼농사 협력사업 면적은 200ha로 넓어졌고 온실 채소농사는 북측 농장원들이 스스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시멘트로 포장된 마을길에는 남측에서 지원한 농기계가 거침없이 달렸다. 학교의 책상은 새것으로 바뀌었으며 유치원에는 새 놀이터도 생겼다.

무엇보다 농장사람들이 남측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처음에는 남측사람들을 무작정 피하려고만 하고 긴장해서 말을 섞기도 어려워했다. 하지만 만남의 횟수가 늘어나고 서로 부대끼다 보니 함께 노래도 부르고 궁금한 것을 스스럼 없이 물어보기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의 장벽은 옅어지고 정은 쌓여 갔다.

'협동농장 현대화사업'은 남북협력이 어떤식으로 진행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사업이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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