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종교가 아니라 깨달음을 실천하는 종교입니다' 최근 한겨레신문의 조현 기자와 오현 스님과의 인터뷰 기사 말미를 장식한 표현이다. "어! 실천이란 화두는 원불교 삼동윤리가 포인트인데…."

오현스님의 천주교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 프란치스코 교황의 화두는 죽어있는 말씀이 아닌 활구(活句) 즉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어! 불교가 다른 종교 성인들의 말씀에서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는 노력을 하네, 근데 이웃종교의 말씀과 함께 하는 노력도 사실 우리 원불교 UR이 포인트인데…." 괜한 혼잣말로 추임새를 넣으며 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있다.

지난 졸고에 우리 원불교는 단순한 깨달음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닌 '실천의 힘'이 필요하다고 전했는데 이번 글 역시 같은 맥락이다. 필자는 원불교 조직 기구에 종사하는 사람 중 이웃종교인들을 포함한 일반인들을 많이 만나는 직업에 속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전 봉두완, 강지원씨와 시사프로를 했을 때는 거의 매일 정치인들을, 둥근소리 둥근이야기를 제작할 때는 대부분 이웃종교인들이었으며, 음악프로 공개방송을 연출할 때는 매회 새로운 스텝들과 호흡을 맞춰야 했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받는 질문 하나 '도대체 원불교가 뭐에요?' 부족하지만 나름 자료를 곁들인 설명을 제공하고 나면 상대의 반응은 대부분 비슷했고 필자 또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곤 했다.

'우리 원불교는 참 실천 가능한 좋은 레시피를 가지고 있고, 또 그 레시피에 의해 만들어진 맛있는 음식들도 많지! 그런데 문제는 그 음식의 향기를 더 넓은 공간으로, 음식의 건강함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실천방안이 부족한 거 같아'는 반성(?)의 경험이다.

지극히 제한된 개인적인 경험들이어서 정확성이나 신뢰도는 높지 않을 테지만 다가올 서울시대를 맞아 많은 사람들이 현실로 느끼고 있는 현상 4가지 정도만 언급해 본다. 참고로 필자는 1998년 익산성지에서 원음방송이 첫 전파를 발사할 때부터 7년간, 그 후 2005년 서울로 키스테이션을 옮겨 11년째, 다행히 지역과 서울 소재에서 모두 방송을 제작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현상 하나, 원불교 성지가 가까이 있는 익산·전북지역 분들은 상당수 원불교를 알고 믿고 있지만 서울·경기지역 사람들 대부분은 원불교가 어떤 종교인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아니,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현상 둘, 큰 동그라미 그려진 건물을 원불교 교당이라고 연계시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하물며 '일원상'이라는 진리표현은 아예 생소한 단어로 치부되기도 한다.

현상 셋, 우리 원불교를 4대 종교라고 하지만 기성 3대 종교와 너무 큰 규모의 차이가 있으며 특히 불교의 한 분파 내지는 심지어 사이비 불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현실이다. 여기에 목사 승려는 알아도 '교무'란 표현은 아직도 "학교 교무실 근무자야"라고 반문하는 슬픔도 있다.

현상 넷, 익산총부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오래 일해온 교무들과 서울, 경지지역에서 근무하고 있는 교무들과의 관점차이, 그리고 해결방식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필자가 언급한 내용들이 부분 틀렸거나, 과장되기도 했겠지만 그러나 한번쯤은 숙고해 봐야 할 고민임을 동의해 줄 것으로 생각한다.

미국의 Pew 리서치와 한국갤럽의 조사결과 중 동일한 내용으로 '2015년 현재 국내 비종교인 50%에 육박!'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문득 며칠 전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5년째 공개방송 음향을 맡아주고 있는 음향전문가 정인택 감독이 회사에 찾아와 우연히 책상 위 대산종사 법문집을 본 후 책을 빌려줄 수 있느냐는 요청을 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종교 말씀이 이렇게 이해하기 쉽고 실천하기 편하게 풀어 놓은 책은 처음 봤다'고 한다. 비종교인인 그의 모습에서 원불교 교화의 작은 방향성 하나를 찾아냈다.

'실천적인, 그래서 원불교!' 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 그것이다.

<원음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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