地幷湖南濶  땅은 호남과 어울려서 활짝 트였고
天連海口靑  하늘은 바다의 어귀와 이어져 푸르구나
稻煙千舶暗  볏짚 태운 연기로 천척의 배가 어슴푸레하고
魚氣萬廚腥  고기 냄새로 집집마다 부엌이 비릿하네
辛苦皆官稅  고생한 끝에 얻은 것 다 관청의 세금으로 내고
喧闐半市聲  저리도 소란스러움은 반쯤 시장에서 나는 소리렸다
吾行亦名利  나도 또한 명예와 이익을 위해서 가노니
風急未廻舲  바람이 급해도 작은 배를 돌릴 수가 없네


'강경 포구에서(江鏡浦)'- 홍석주(洪奭周 1774-1842년 조선후기의 문신)

홍석주의 본관은 풍산, 호는 연천(淵泉), 학문이 깊고 벼슬이 대제학과 좌의정에 이르렀으며 저서로 '연천집' 등이 있다.
정조 때 대제학 홍양호의 기록에 따르면, 안동 지방의 풍산홍씨는 문과 급제자 116명, 무과 90여명, 정승 5명, 판서 30명을 배출한 명문거족이었다.

또한 홍석주의 조부는 영의정 낙성, 부친은 우부승지 인모이여 모친은 여류시인 서영수각이다.

하지만 홍석주는 정승임에도 성품이 고요하고 평민처럼 겸허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마음을 닦고 학문이 쌓이면 덕과 도와 글이 이루어진다'는 그의 도가적인 자세 때문이었다. 그는 헌종 2년 모반에 연루되어 물러났으나 좌의정에 올라 세손의 사부가 되었고, 순조 사후엔 풍양조씨와 세력싸움을 벌이던 안동김씨 세도정권과 손을 잡고 한몫을 하였다.

위의 시는 충청감사 홍석주가 조선의 3대 시장인 충남 강경 포구의 활기찬 모습을 묘사한 작품으로 세도정권에 기생하던 벼슬아치들의 착취를 비판했다. 백로(白露)에 햇볕이 쨍쨍하면 쌀이 12만 섬 더 수확된다고 한다. 가을엔 하늘이 더 투명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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