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닫이(가로 92.8cm×세로 41cm×높이 52cm, 1930년대).
이 반닫이는 소태산 대종사의 수용품을 보관할 때 사용한 유물인데, 앞면에 보이는 반절크기로 문을 만들어 앞으로 여닫게 되어 있는 유물이다.

이 반닫이는 일정한 두께의 합판으로 못을 사용하지 않고 톱니 모양으로 끼워 맞춰서 제작되었고, 후에 뒤틀림을 방지하기 위해서 격자를 대었다.

이 장의 옆면에는 들 때 이동이 편리하도록 손잡이가 부착되었으며, 정면의 상단부분이 열리도록 중간에 4개의 경첩을 가로로 일정하게 부착하여 앞으로 문이 열리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윗면에는 잠금장치가 부착되었으나 정면 쪽은 문고리의 흔적만 남아있다. 유물의 외관을 자세히 보면 옻칠이 많이 벗겨진 상태이며 외부로 부터의 충격으로 인하여 훼손된 흔적이 제법 많다. 다만 오래 사용되고 자주 사람의 손을 타서 윤기로 인해 옛 물건의 티가 많이 난다. '과연 저 흔적들이 어떤 이유로 해서 남겨졌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초기 교단 시절 자주 험하게 검열하던 일본의 탄압에 대한 아픔을 대변하는 흔적일까? 아니면 오랜 시간 사용되면서 온도와 습도의 변화에 따라서 옻칠이 떨어져 나가게 된 것일까? 소태산 대종사 열반 이후에 여러 사람의 손에 전해지면서 혹은 관리하는 사람들이 자주 바뀌면서 수시로 자리를 옮기는 과정에서 생긴 훼손의 흔적일까? 다행스럽게도 반닫이 유물은 그 원형이 크게 훼손되지 않았기에 보존 처리를 통해 영구 보관이 가능하며, 복제 또한 우리의 관심을 통해 더욱 더 가능하다.

하지만 이 반닫이와 그동안 살펴본 많은 유물들이 교단의 유물 관리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부족하여 훼손이 된 것이 많았는데, 그 유물들이 체계적으로 보존, 연구, 성찰되어 관리되었다면 현재 우리 교단이 얼마나 더 다른 모습으로 발전되었을까를 생각해본다. 그리고 지금도 역사박물관에서 관리하는 유물들이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부족한 수장고 공간을 확대하고 유물들은 각 곳에 분산시키는 일이 시급하다.

조선왕조에서 4대 사고를 건축했기에, 분리 보관을 통해 수많은 곡절을 거쳐 세계 문화유산으로 남긴 사례를 흉내라도 내야 하지 않겠는가. 아직도 수장고 속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유물들을 관리하고 보관하여 보존이 되도록 해야 하는데 현실은 너무 멀다. 더불어 유물 수장고에 보관된 많은 유물들도 유물 관리를 더 의미 있게 하기 위해서 유물을 분석하고 의미를 부각할 수 있는 연구팀이 박물관에 꼭 있어야겠다.

원불교 100주년을 맞아 진급되어지기 위해 많은 일들이 진행되어지겠지만, 무엇보다 시급한 일은 우리 초기 교단의 깊은 뜻이 서려있는 유물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는 일이다.

<원불교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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