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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어르신들의 축제 '면민의 날'
농촌 어르신들의 축제 '면민의 날'
  • 이성심 기자
  • 승인 2015.10.16
  • 호수 177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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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민과 하나되는 오늘 '그냥 젊어지는 날이랑게'
▲ 어르신들이 가수 송대관 씨의 노래에 맞춰 어깨춤을 추며 흥겨워 했다. 농어촌 면단위로 열리는 '면민의 날'은 어르신들의 잔칫날이다.
▲ 양지마을 권삼례 어르신.
▲ 만국기가 펄럭이는 줄포면민의 날에 주민들이 고무신 멀리 던지기 경기를 하고 있다.
2일 노인의 날과 천고마비의 계절을 맞아 곳곳에서 축제가 한창이다. 10월에 열리는 화려한 축제들 사이에 살짝 명함을 내미는 축제, 바로 '면민의 날'이다. 농어촌 면단위 주최로 열리는 이 행사는 어르신들에 있어 '잔칫날'이다.

올해 37회를 맞는 전북 부안군 줄포면민의 날은 2~3일, '면민과 관광객이 함께하는 어울림의 축제'로 열렸다. '산들산들 은빛갈대 도란도란 줄포만 갯벌생태공원 이야기'라는 주제로 관광객 즉석 노래자랑과 강강술래, 풍등날리기, 갯벌체험, 민속경기, 면민 노래자랑, 귀농 귀촌관광안내 등 체험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잔치 겸 운동회

3일, 갯벌생태공원 잔디마당에서 진행된 윷놀이, 제기차기, 투호, 고무신 멀리던지기 등 민속놀이는 마을별로 남녀 어르신 선수들이 출전했다. 어르신들 사이에 젊은 새댁들도 눈에 띈다. 결혼이주여성이거나 자녀, 관광객들이다.

투호마당은 여자 어르신들만 출전하는 장. 만국기와 어울리는 빨간 겉옷은 어르신들 내면의 열정을 대변하는 듯하다. 투호 하나가 항아리에 들어갈 때마다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긴 팀에게는 커다란 선물이 안겼다.

고무신 멀리던지기는 남녀 혼합경기. 100점대를 향해 고무신을 멀리 벗어 던져 보지만 맘처럼 쉽지 않다. 눈앞에 떨어지기도 하고, 안전지대를 벗어나기도 했다. 연습 삼아 던져보는 신발은 저 멀리 날아가는데, 왜 경기에서는 그리 멀리 가지 못하는지. 멋진 폼으로 재차 도전하지만, 안타까움만 한 가득이다. 그래도 면민과 함께하는 민속놀이라 재미지다.

트로트 음악이 팡팡~ 울려 퍼지는 가운데 진행되는 면민의 날은 '어르신들의 운동회 날인가'하는 착각도 일으킨다. 남자 어르신들의 윷놀이 결승전을 한다는 안내방송이 울려 퍼졌다. 넓은 잔디마당 여기저기에서 진행되는 어르신들 잔치. 점심을 먹다가도 숟가락을 놓고 경기에 출전하는 흥겨운 시간이다.

즐거움도 가득, 근심 걱정도 많아

마당 관람석에 앉아 경기를 관람하는 김영갑(82·줄포읍) 어르신.
"몸이 아파서 게임은 참석허지 못허지. 어제 밤에는 사람들이 겁나게 왔었어. 여기 와서 앉아만 있어도 기분이 좋제. 그래서 어제도 오고 오늘도 구경 나왔지."

갈색 선글라스 너머로 면민들의 흥겨움을 조망하는 김 어르신에게는 걱정이 하나 있다.

"8남매가 모두 효자여. 딸이 일곱이고 막내가 아들이여. 공부도 잘해서 서울서 대학을 나왔지. 좋은 회사에 취직도 했는데 3년 다니다가 고만 뒀어. 안식구가 아퍼서 고향으로 내려왔어. 부안에 살고 있는데, 며느리가 수술할 날을 받아 놓았어. 그래서 마음이 무겁기도 허제."

김 어르신의 며느리 자랑이 이어졌다. "며느리는 서울에서 학교를 나와서 자격증도 여러 개 있어. 아퍼서 제대로 쓰지도 못허닌께 안타깝지만, 수술 받고 나면 건강해지겠지. 지그들은 돈 걱정부터 시작해서 아무 걱정 말라는디, 이제 우리 식구 된 며느리인게. 딸들이랑 힘을 모아서 병원비도 도와주고 건강 회복하라고 용기를 줘야제." 집집마다 걱정 없는 집 어디 있으랴마는 '그것이 인생이다'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는 어르신.

"우리 할망은 올해 77세인디, 아퍼서 거동이 좀 어려워. 그래서 나 혼자 여기 잔치에 나왔지. 어제는 그 전날 모처럼 비가 와서 밭에 무를 심었지. 아들에게 오라고 해서 같이 했는데 한결 수월했어." 당신의 일상을 격의 없이 말하면서 한편 위안을 얻는 것 같았다. 어르신의 손에는 3시에 진행되는 경품 추천권이 꼭 쥐어져 있었다. 삶에 대한 근심 걱정이 행운권 당첨으로 씻어지길 염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트로트 음악에 기지개 켜는 흥

흥겨운 잔치 마당에 주변인처럼 앉아 있는 또 한 어르신. 줄포 양지마을에 사는 권삼례(84) 어르신이다.

"우리 마을에는 사람도 별로 없어. 모두 외지로 나갔지. 오늘 여기 와서 보니 젊은 사람도 많네. 딴디 마을에서 다 왔는 갑서. 존 시상인디 이제 나는 너무 늙어 버렸어. 죽을 날만 가차워 온당게. 그래서 그런지 온 삭신이 다 아퍼. 어제도 머리 아퍼서 부안까지 병원 다녀왔어."

영감이 택시를 불러 줘서 편하게 다녀왔다는 어르신은 "영감하고 같이 와야는디, 맘만큼 되간디. 그냥 혼자 궁금해서 나와 봤어"하고 설명했다. 왠지, 화창한 면민 잔치에 그 어떤 쓸쓸한 속내를 본 것 같아 허허로움이 전해졌다. 그래도 어르신은 힘없이 소리 없는 박수를 치며 잠자고 있던 흥을 마구 일으켜 세우는 한낮이다. 노랫가락을 중얼거리며 트로트에 몸이 움직이기도 했다.

연정마을에서 온 노갑순(70) 어르신은 손자 보느라 마냥 즐거운 표정이다. "우리 며느리가 한국으로 시집온 지 10년이 됐어. 큰 딸이 8살, 둘째는 7살, 이놈이 막둥이여." 할머니와 사진을 찍어 준다고 하니 얼굴 가득 웃음을 보여주던 3살 박이.

"우리 며느리는 나를 부엌에 들어서질 못하게 해. 지가 다 한다고, 시집온 지 10년 되었어도 못하는 사람은 못해. 근데 우리 며느리는 참 잘해. 저기 우리 며느리 오네."

손자 보느라 민속경기에 참석하지 않아도 즐겁다는 어르신은 "면민의 날 행사 자체만으로도 젊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날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면민의 날 행사는 송대관 초대가수의 공연이 펼쳐지는 가운데 마지막 무대를 향해갔다. "언니들 오래 기다리셨지라우~" 송대관 씨의 한마디에 18세 소녀처럼 돌고래 함성이 울려 퍼졌다.

무대가 잘 보이는 언덕에서 면민 잔치를 지켜보던 부안군 보안면의 한 어르신은 "참말로 재밌는 날인디 시간이 빨리 가네. 줄포 사람 아니면 축제 못 들어가. 그래서 여기서 보는 거여"하며 농담을 건네기도.

통계청이 발표한 '2015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10년 전보다 200만 명 증가, 전체 인구 8명 중 1명은 노인인 셈이다'고 밝혔다. 또 10명 중 6명은 연금수령액이 0원이다. 우리나라 평균 수명은 늘었지만 삶의 만족도에 있어서는 성적이 좋은 편은 아니다.

"건강하고 재밌어야지, 오래 살기만 하면 뭐하겠냐." 혼자 적적하고 힘들게 사는 삶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일반적이기도 하다.

'면민의 날'에 만나 본 어르신들. '적적한 가운데 이런 잔치가 있어 그래도 흥겹고 좋다'는 한결같은 대답이다. 사회적 약자인 어르신들이 약자에 머물지 않고, 활동할 수 있는 만큼 주민자치센터의 각종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구십 구세까지 팔팔(9988)하게 인생을 즐기는 노후를 보내길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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