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효천 교무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바람을 하나 찾는다면 행복이 아닐까? 행복하기 위해서 힘든 순간들을 인내하며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꾼다. 행복이 어디에 있냐고 묻는 우리에게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답한다.

"주변에 이미 행복은 함께 하고 있다" 혹은 "내 안에 언제나 행복이 가득하다."

그럼 그 행복을 본 적 있는가? 이 행복을 보지 못한 사람은 행복하고자 하는 생각과 행복을 찾는 사실적인 실천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행복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실천의 열쇠는 '감사'이다.

세계적으로 부모가 자녀에게 엄마, 아빠 다음으로 가르치는 말이 '고맙습니다'라고 한다. 이 안에 어떤 의미가 있어 아이들에게 강조를 할까 생각해 보면 인류는 감사를 통해 근본적인 행복을 느낀다는 사실을 감각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행복이란 상극의 인연이 없는 상생의 인연으로 가득함이다.

원불교는 감사생활하는 종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상 생활 속에서 마음공부를 실천하고 대조하는 공부법인 일상수행의 요법 중 5조는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리자'로 원불교 신앙의 핵심이다.

〈정전〉 교의편 사대강령 중 지은보은에는 '… 원망할 일이 있더라도 먼저 모든 은혜의 소종래를 발견하여 원망할 일을 감사함으로써 그 은혜에 보답하자는 것이며'라고 밝혔다. 없어서는 살 수 없는 관계인 은혜가 있게 된 과정을 찾아보면 원망의 대상에게 감사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행복을 위해서는 감사생활을 해야 한다.

또한 감사하면 걱정과 근심이 줄어든다. 살아가며 학업, 취업, 연애 등 걱정하는 만큼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면 부족함 없이 행복할 것이다. 걱정하는 것은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 걱정은 확실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부담감이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행복을 느낄 여유마저 없어진다는 것이다.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앞으로의 삶도 행복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을 행복하고 만족하는 사실적 방법이 감사이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 마라톤 선수는 42.195㎞를 바라보고 달리는 것이 아닌 500m, 1㎞를 보고 달린다고 한다. 시작부터 너무 막연한 거리만 바라보고 달린다면 쉽게 포기하게 되겠지만 눈앞의 도달점을 충실히 성취해 갈 때 결국 결승점을 통과하게 되는 것처럼 우리 역시 삶의 목표라는 결승점만 바라보고 생활하면 더 지치고 힘들게 된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을 벗어나 행복하고 싶다면 감사생활을 하자. 지금 내 손에 쥐고 있는 것이 걱정만큼 모자란 수준이 아님을 보게 된다. 내 걱정 속 가치에서 벗어나 현실의 소중함을 보게 된다.

그렇게 현재의 행복에 충실하며 비록 내일 뜻하지 않는 어려움을 겪는다 해도 그 순간만큼은 더 없이 좋은 하루가 되도록 하자. 행복한 하루하루가 모여 결국 행복한 미래를 만들 테니까.

<열쇠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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