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경 공부 32

▲ 나성제 교무/우인훈련원
훈련원 주변에 그렇게 무성하게 자라던 풀과 나무들이 이제는 성장을 멈췄다. 간밤에 내린 찬이슬에 텃밭의 여러 채소들이 시들어 죽었고 월동을 준비하는 채소들은 겨울을 나기 위하여 위로 뻗지 않고 땅에 바싹 붙어 추운 겨울을 맞이할 채비를 하고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변화 속에서 스스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힘이 부여돼 있다. 그 변화에 합일하지 못하면 죽게 되는 것이다. 우주의 원리 자체가 변하는 이치와 불변하는 이치가 동시에 작용하며 만물을 장양시키기도 하고 숙살(肅殺)시키기도 한다. 진리는 무엇인가에 틀에 묶여 있지 않고 있어졌다 없어졌다 하기를 자유자재로 하면서 만물을 주재하고 있다.

허공에 뿌리를 하고 있는 동물이나 땅에 뿌리를 하고 있는 식물들은 모두 그 원리에 적용을 받고 있기 때문에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변화되어 간다. 때문에 우주의 한 기운으로 통하고 있는 사람의 마음은 찰나 찰나마다 형형색색으로 발현되어지며 변화 속에 자신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은 영원히 다시 돌아오지 않는 기회가 되는 것이고 한 번밖에 없는 시간이다.
이렇게 우주와 만물과 내가 역동적으로 돌아가는 이치 속에서 나는 선하다 또는 악하다 하면서 묶여 있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선과 악은 본래 없는 것이므로 선입견이나 관념으로 무엇인가에 틀에 잡혀 있으면 중생행으로 발현되는 수밖에 없다. 누구나 얼마든지 능히 선해질 수 있고 능히 악해질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이나 타인을 바라볼 때 선입견이나 과거의 모습으로 바라 본다면 그것 또한 죄악이 될 것이다.

어린아이가 커서 철든 어른이 되고 어리석은 중생이 변해서 불보살이 되는 것이고 가난했던 사람이 어느 날 부자로 부상하고 낮아보였던 사람이 출중한 인물이 되는 것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인데 아상이나 자기 생각에 묶인 언행으로 타인을 대하는 것 또한 그른 행이다.

그래서 과거 불보살들이 참 마음은 과거심도 현재심도 미래심에서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참된 마음은 어딘가에 묶인 바가 없는 것이므로 평소에 진공(眞空)으로 체를 삼고 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분별주착심이 나를 사로잡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를 직시하지 않고 사람이나 사물이나 일들을 대할 때 과거의 주착심으로 바라보며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고 죄업을 짓고 살아가고 있는가. 자신에게도 또한 한때의 선업이나 한때의 악업으로 자만자족이나 자포자기로 얼마나 매장시키고 살아가는가.

범부중생심의 특징은 어딘가에 주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딘가에 주하는 순간에 그것이 착이 되고 나아가 업장이 되는 것이므로 한순간도 쉼 없이 변화시켜, 허공법계에 마음을 주하고 뿌리를 단단히 내려야 할 것이다.

<우인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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