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교당과 마음 열고 소통해야
폐쇄·배타성 극복한 대사회화 적공에 힘써야

▲ 윤명은 교도 / 영등포교당
얼마 전 한 지역에서 사회교화를 막 시작하려 한다는 교당에서 있었던 일이다. 환경운동을 하는 한 단체가 처음으로 교당에서 교육 관련 행사를 했으면 한다며 공간 사용을 요청했다. 장소 사용료, 뒷정리 등 상식과 절차에 어긋나지 않게 섭외를 진행했는데, 교당 교도들이 보안과 청결을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고 전해 들었다. 물론 저간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지만, 사회교화에 적극 나서려는 교당 책임자의 의지와는 달리 실제 운영에 목소리를 내는 교도들이 적당한 구실을 내세워 거절했다는 것이다. 이 일로 원불교와 접점을 마련하고 소통을 하려고 처음으로 문을 두드린 단체나 이를 연계한 활동가 모두 무색한 처지에 놓였다. 실로 안타깝고 무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어쩌면 이것이 원불교의 현주소일지도 모른다. 명망가들이나 힘있는 사회단체들에게는 그렇지 않지만 이와 비슷한 일들은 교단 안팎에서 적지않게 일어나고 있다.

서울과 지역을 막론하고, 시민들과 더불어 교화의 공간으로 적극 활용되야 마땅한 교당이나 기관의 문이 굳게 닫혀 있거나, 온 세상을 뒤흔들 만한 사회 문제와 병든 사회의 고통이 엄습해 와도 이를 치유하거나 품어내지 못한 채 교단의 안위와 현상 유지에 치중해 있는 모습을 종종 본다. 또한 사회 개벽의 일꾼으로 나서고 있는 이들을 지지하고 힘을 북돋아 주기보다 힐난하거나 무시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지는 않는가.

시민사회운동에 대한 많은 재가 출가들의 오해와 편견, 그리고 나약한 보신주의, 소아병적인 집단이기주의가 똬리를 틀고 있다가 불쑥불쑥 고개를 쳐든다. 이래서야 원불교 100년을 맞이해 다시 새로운 100년의 앞날을 진리의 횃불로 밝혀 나갈 수 있을 것인가.

몇몇 활동가와 뜻 있는 재가 출가교도들이 나서 시민사회와 접점을 만들고 교리의 대사회화를 펼쳐나가는 데 진력을 다한다고 해도 가장 기본일 수 있는 원불교 안에서 시민사회와 소통하려는 마음의 문이 밖으로 열려 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모든 일이 결국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보기에는 화려하지만 실질적공이 쌓이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이다.

원불교가 교법의 대사회화 실천을 구두선(口頭禪)으로만 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성의 죽비를 크게 한번 내리쳐 볼 일이다.

이제 닫혀 있는 교당과 기관의 문을 시민사회를 향해 활짝 열어젖히자. 교당과 기관은 지역민들과 소통하고 사회단체들과 연대할 방안을 만들어 적극 동참하고 실천하는 대사회화 적공의 터가 돼야 한다. 그것이 시대가 지금 우리에게 시급히 요청하는 일이다. 그럴 때만이 우리 사회와 사람들이 삶 속에서 원불교의 사상과 교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진리의 길에 함께 참여하게 될 것이다.

자본과 물질의 폐해로 병든 사회의 병리 현상을 두 눈 똑바로 쳐다보고 원불교 진리를 신앙하는 대종사의 제자로서 시대의 아픔을 끌어안고 치유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세상의 아픔과 고통을 외면한 채 무사안일하게 살아가려는 나태와 안일을 벗어던지고 개벽의 일꾼으로 시민사회와 굳건히 손 맞잡을 때이다.

마음의 깊은 의심을 내려놓고 소외받은 이들과 진리의 길을 밝혀나가려고 하는 이들과 만나 지금보다 더 적극 공감하고 소통해야 한다. 그리고 거대담론을 좇기보다는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우리가 이웃과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배우고 실천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사회의 변화와 진실을 밝히려는 모든 양심에게 연대의 손을 내미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거대한 성전과 성탑도 작은 주춧돌 하나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새로운 원불교 100년을 이끌어갈 역사의 주인으로 이제 성큼성큼 걸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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