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 신분 다른 군번 3개

군대를 다녀온 대한민국 남자라면 평생 기억하는 게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것은 군번이다. 남들은 한개인 군번이 나에게는 세개나 있다. 155○○○, 00-71035○○○, 11-20○○○. 각각의 군번에 따라 주어진 계급도, 신분도 달랐다.

155○○○, 1997년 고등학생 때 부여받은 군번. 고등학생이 무슨 군번? 사실 이것은 육군사관학교를 지원하고 나서 받은 군번이니, 엄밀히 말하면 군번이라기보다는 수험번호라고 해야 옳다. 원불교 군종에 대한 서원은 바로 이 번호로부터 비롯했다. 최종면접관인 생도대장(장군) 앞에서 당당히 원불교 군교화에 대한 포부를 설명하고 낙방이라는 씁쓸함을 맛보게 한 첫 번째 잊지 못할 군번이다.

00-71035○○○, 2000년 강원도 화천에서 병사로서 군에 입대한 후 받게 된 군번. 이 번호야말로 평생 잊지 못할 제대로 된 군번이다. 병사의 신분으로 7사단 최초의 원불교 군법회를 개설하고 군교화에 대한 포부를 실행에 옮겼던 두 번째 군번이다.

11-20○○○, 2011년 3사관학교에서 군종사관후보생 과정을 수료하고 군종장교로서 받은 군번. 이는 현재 나의 신분을 가장 명확히 드러내고 있는 군번이다. 성직자와 군인의 두 가지 신분을 국방부로부터 인증받은 군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서원한 군교화의 포부에 날개를 달아준 군번이기도 하다.

원불교에 입문해 법명을 받으면 그 법명에 걸맞은 삶을 사는 것이 교단에 대한 보은의 도리라 할 수 있듯이 국가로부터 군번을 받았으니 국방의 의무는 물론이고 그 군번에 맞는 이른바 군번 값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 값으로 첫 번째 군번을 부여해준 육사에서 화랑대교당 봉불을 앞두고 있고, 두 번째 군번을 부여받은 7사단에서는 1군사령부 지역 최초의 군교당인 칠성교당 건립을 이뤄냈다. 재가 출가교도들의 정성과 염원으로 완성될 또 다른 군번 값은 어디에서, 어떻게 이뤄질까.

<육군사관학교 군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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