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선학대학교 강희은 교무

▲ 캠브리지 시청의 허가를 받아 스케치 노트, 엽서, 목걸이, 배지 등을 판매한 마켓 디스플레이.
15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예술대학, '캠브리지 스쿨 오브 아트(Cambridge School of Art)'에서 최근 일러스트레이션(illustration)으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은 강희은 교무. 소위 '비미술학도'였던 그가 혈혈단신 영국으로 떠나, 미술로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돌아오게 된 계기와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강동교당, 불광교당 교화 시절 '원불교 교구·교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강희은 교무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교화 교재를 만들고 싶은 생각을 한다. '대외적으로 쓰일 수 있는 교재를 만들려면 '전문적'인 공부를 해야 한다'는 주위 교무들의 권유를 받은 그는 늦게나마 상명대 디자인 대학원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일러스트레이션 석사과정에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가 전공한 일러스트레이션은 삽화(揷畵), 도해(圖解)로써 서적(사본, 인쇄본 등), 잡지, 신문, 광고 등에서 문장내용을 보충하거나 강조하기 위한 목적으로 첨부하는 그림을 뜻했으나, 현대에는 일러스트레이터(illustrator)라는 직능이 본격적인 화가와 그래픽디자이너 사이에 개입되어 있어, '삽화풍의 그림'을 부르는 것으로 확대됐다.

상명대 입학 후 '미술 초짜'인 그를 모 교수는 등을 돌리고 수업을 하는 등 선뜻 제자로 받아주지 않았다. 그는 이 때를 회상하며 "일원문화재단에 논문을 쓰고 연구비를 받아서 한 달 동안 유럽으로 떠났다. 유럽에 있는 박물관, 미술관 100여 군데를 돌아다니며 스케치를 하고 서양의 미술사를 눈으로 보고 느끼며 원불교 미술사가 가져야 할 방향에 대한 화두를 가지고 돌아왔다. 방학이 끝나고 방학 동안 학습한 것들을 교수에게 보여줘 제자로 인정을 받는 계기가 됐다"며 그에게 있어 가장 큰 전환점이라 말했다.

이러한 열정과 노력을 바탕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한 그에게 교수들은 동·서양을 아우르는 작품을 위한 유학길을 권유한다.

원기96년(2011) 1월 캠브리지 스쿨 오브 아트에 첫 발을 디딘 강희은 교무는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저명한 마틴 솔즈버리(Martin Salisbury)교수와 인터뷰를 하게 됐다. '나는 불교에 대해 잘 모르지만, 너의 연구를 통해 알아가고 싶다'는 마틴 교수의 말을 듣고, '이런 생각을 가진 교수라면 신뢰하고 배움을 얻어갈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을 한 강 교무. 그는 무시선 무처선의 명상을 주제로 어린이 그림책을 만들고 이를 통해 교화까지 이끌어내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았다.

그 목적에 대해 그는 "첫째 어린이들이 스스로 글의 내용을 통해 무시선 무처선을 찾아가는 능동적인 동기를 주기 위해서였고, 둘째는 명상이라는 단어가 줄 수 있는 독자의 한계성을 벗어나 일반적으로 어린이나 그의 부모들이 읽고 싶은, 혹은 사주고 싶은 그림책이 될 수 있도록 함에 그 목적이 있었다"며 "이를 위해 현존하는 세계 각국의 어린이 명상 그림책들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장점을 모아 무시선 무처선의 내용을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그림으로 담아 냈다"고 말했다.

그는 현지인들에게 원불교를 알리기 위해 특강을 하거나 그들의 문화를 익히기 위해 베이비시터를 하기도 했다. 또한 캠브리지 시청의 허가를 받아 프리 마켓에 작품을 내놓은 일은 그에게 큰 도전이었다. 그는 "교단에서 교구, 교재 등의 작업을 할 때 경쟁할 수 있는 실력을 길러야 하고 또 그것을 실험하는 계기가 필요했다"며 "캠브리지에서 유명한 곳을 스케치한 노트, 엽서, 목걸이 등의 기념품과 명상 그림으로 담아낸 배지, 손거울 등을 판매했다.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 이웃 주민들에게 자연스럽게 교리를 설명할 수 있는 장이 된 것 같아 뿌듯했다"고 말했다.

디자인 물품들을 생산하고 판매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에서의 한계에 도전하고, 미래 교단에서 쓸 작업들의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가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 온 것이다.

원기100년, 마침내 그는 그간 집필해온 연구결과물들을 엮어 논문을 통과, 3년 7개월 만에 캠브리지 아트 오브 스쿨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하게 됐다. 그가 24페이지로 엮어낸 어린이 동화책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과 그의 박사 논문 〈어린이에게 명상을 소개하는 매체로써 그림책의 창의적인 실습을 주도하는 연구〉는 영국의 국립 도서관에 소장될 예정이며, 포르투갈, 프랑스, 덴마크의 저명한 학술지에도 소개된 바 있다.

그는 짧지만 긴 여정이었던 4년 10개월간의 캠브리지 생활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영국에서 6년간의 석·박사기간 동안 물심양면으로 지도와 도움을 아끼지 않았던 부천교당 유덕중 교무를 비롯 교단 스승들께 고개숙여 감사를 드린다. 유학을 가기 전 원불교 달력, 청소년국 희망숲 디자인에 참여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동안 공부하고 배워온 것들을 발판삼아 작업함으로써 교단에 보은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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