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경 공부 34

원래 부처의 가르침은 자기 일을 자기가 해결하는 공부를 가르친 것이다. 우리는 흔히 일이 잘못됐을 때 남을 먼저 원망하게 된다. 그것은 아직 자신의 참다운 존재를 찾지 못했다는 증거이며 철이 없고 자력없는 공부인이다.



부처는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 했고, 대종사는 만세멸도 상독로(萬世滅度常獨露)라 했다. 다 홀로 걷는 진경을 표현한 말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역할이 부여돼 있고 길이 있다. 그 역할과 갈 길을 충분히 알고 행해야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다른 모든 것들과 순리로 평탄하게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집을 하나 짓는 데에는 작은 못도 필요하고 대들보도 필요하다. 전체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지만 하나하나가 모두 역할과 사명이 있으므로 자신의 갈 길을 분명하게 알아야만 나도 살고 다른 사람들도 살리는 일을 할 수가 있다.



이 세상은 음양상승의 도를 따라 인과보응의 이치로 선악업보가 반드시 있어지므로 선과 악에 매이지 않고 해탈의 심경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자신도 선인의 역할을 할 수도 있고 악인의 역할을 맡을 수도 있기 때문에 원래 선악이 없는 심경으로 살아가는 것이 제일 지혜로운 삶이다.



공부를 하다 보면 나는 공부를 하는 사람, 도덕을 아는 사람이라고 자부하면서 스스로 아상에 가리는 수가 있다. 그러면서 상대를 보는 눈은 걸림이 없어서 허물을 바로 보고 나는 바른 사람, 상대는 악한 사람으로 스스로 판단을 해서 함정에 빠져서 살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또한 중생심인 것이다.



원래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이 결코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길을 제대로 밝히는 공부가 제일 중요한 공부이다.



나를 알아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알고 세상도 알고 모두를 위해서 어떤 일을 해야 한다는 답도 얻을 수 있다. 그래야 참된 선을 행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법이다.



즉 완전한 자력인으로서 함께 살아 갈 수 있다. 제각각 내가 지은 업을 다른 사람이 대신 받아 가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의 업을 대신 내가 받아 줄 수가 없는 독립체이기 때문에 사물 하나하나 한 사람 한 사람이 너무나 고귀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자기 삶을 자기가 결국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지 잘된 사람은 그만큼 대가를 치뤘을 것이므로 탐내고 시기할 일이 아닌 것이다. 잘못을 범했을 때에는 조금이라도 내가 그 과보를 대신 받아준다면 미워할 자격이라도 있겠지만 결국은 본인이 그 죄업의 대가를 치루 게 하는 것이 대자연의 이치이므로 슬퍼할 일이지 미워할 일은 아닌 것이다. 그러기에 홀로도 밝아야 하고 그러면서 함께 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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