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적정기술 구현하는 난로의 귀환

▲ 로봇모양으로 인기를 끈 '난로봇'.
▲ '나는 난로다'에 출품된 난로들은 적정기술의 가치와 디자인의 미학을 조화롭게 담아냈다.
수십 년 전만 해도 타닥타닥 장작 불붙는 소리로 긴 겨울밤이 시작되곤 했다. 물도 끓이고 군밤도 구워먹으며 난로로 그 긴 밤들을 보냈고, 밖으로 뺀 연통에서는 늦은 밤까지 따뜻한 연기가 처마 밑 고드름을 녹였다. 학교에서의 난로는 양은도시락들의 보관대로, 쉬는 시간마다 도시락들의 위치를 바꿔 고루 데워줘야 싸움이 나지 않았다.

장작을 패며 겨울을 준비하던 옛 삶은 양옥주택의 연탄과 아파트의 가스보일러로 바뀌었고, 이 물질개벽에 따라 난로는 점차 자취를 감췄다. 화덕과 곤로 등 크기가 작은 난방기들도 이내 온풍기나 전기장판 등이 대신하며 이제는 '응답하라 1988'에서나 볼 법한 추억이 됐다.

난로는 적정기술 구현에 적합한 소재

그러나 최근 전원으로의 회귀열풍과 에너지 전환, 적정기술이 삶의 대안으로 대두되면서 우리 곁에 난로가 다시 돌아왔다. 전국 난로 장인들이 한자리에 모인 2015 완주 전환기술전람회 '나는 난로다'에서, 각양각색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이 결합한 세상의 모든 난로가 선을 보인 것이다.

13일부터 사흘간 전북 완주군청 특별주차장에서 열린 '나는 난로다' 행사는 올해 5회로, 전환기술사회적협동조합이 주최하는 전국 유일의 난로축제다. 화목자작난로와 화덕 40여 점이 출품됐으며, 시상은 물론 이와 관련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펼쳐졌다.

궂은 날씨에도 불구, 이번 행사에는 1만여명의 관람객들이 참여해 난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보여줬다. 난로와 화덕 관련 종사자뿐 아니라, 집이나 야외, 캠핑 등에서 사용할 난로를 구입하고 직접 만들어보려는 사람들도 참여해 난로들을 직접 만져보고 제작자의 설명을 들었다. 최근 화목난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보일러를 만드는 기업에서도 난로를 제작, 상담부스를 열기도 했다.

이 축제에 함께한 난로들은 보일러나 전기를 이용한 난방기와는 달리 적정기술과의 결합으로 한층 효율을 높였다.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은 영국 경제학자 슈마허의 저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1973년)'에서 처음 나온 말로, 소외되거나 빈곤한 계층의 삶을 향상시키는 인간성에 바탕하며,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가급적 가공을 하지 않는 환경 친화성을 지닌다. 또한 인류와 지구의 존재 지속성을 유지한다는 면에서 미래지향적이며, 빈부 격차를 해소하고 환경복지를 구현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철학적이라고 평가된다.

무엇보다도 경제적이며 작고, 효율이 높으며, 에너지 소비가 적은 대신 최대한 자연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에 적정기술의 의미가 있다. 수리가 가능하며 지역에서 생산되고, 기존 문화를 대체하거나 파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난로와 화덕은 이 적정기술 구현에 가장 적합한 소재로 꼽힌다.

난로봇, 거위난로, 돼지난로 기발한 디자인

이날 부스마다 설치된 난로들은 저마다 장작이나 펠릿, 쓰레기를 재료로 온기를 띠었다. 전통적인 장작에 이어 최근 각광받는 펠릿은 목재나 제재소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톱밥으로 분쇄해 압축한 목질계 바이오연료로 친환경적이며 경제성 또한 높아 관심을 모은다.

연료의 다양성 뿐 아니라, 난로들은 묵직한 검은색 원통 이미지를 벗어나 세련된 디자인과 결합에 다양한 색깔과 모양으로 연출됐다. 가장 먼저 관람객들을 맞은 '난로봇'은 로봇 모양의 난로로 특히 인기가 높았다.

경연은 크게 제작비 30만원을 초과하는 적정난로와 이하인 적당난로로 나뉘어 총 40여 점의 작품이 출품됐다. 난로들은 효율을 높이는 것뿐 아니라 안정성과 지속성에도 중점을 두어 견고하게 제작됐다.

나무가 타는 장면을 볼 수 있게 한 '화목난로(이영찬)', 거위 모양의 '거위난로(김일상)', 돼지를 형상화 한 '피그 세븐 로즈(한경호)', 문을 양쪽으로 해 쓰임새를 키운 '양문 돌출형 벽난로(박두성)' 등이 인기를 끌었다.

제작비 30만원을 넘지 않는 적당난로는 주로 캠핑 등 야외활동을 겸할 수 있는 작은 규모를 기발하게 실현한 난로들이다. 대부분 취사를 결합한 가운데, 3구의 그릴로 활용 가능한 '3구 cooktop stove(박홍순)', 나무가 적게 들어가는 '다용도 다이어트 난로(엄영환)', 불길이 좁은 틈새를 지나가며 효율을 높인 '부넘기화덕(전환기술사회적협동조합)' 등이 관심을 받았다.

완주 지역사회와 함께 만드는 축제

이날 화로난로를 출품한 송악에너지공방협동조합은 아산 송악 초·중·고교생으로 이뤄진 청소년 적정기술 체험단과 함께해 학생들이 적정기술 작품들을 선보였다. 적정기술을 공부하고 나름의 아이디어로 구현한 이동형 비닐하우스와 태양광 수경재배기에 대해 설명하는 이 기특한 청소년들에게 많은 관람객들이 박수와 응원을 보내기도 했다.

이 밖에도 '나는 난로다' 행사장에서는 어린이 벼룩시장과 함께 매일 난로들에서 고구마를 구워 관람객들에게 나눠주고 난로와 화덕 경품 추첨과 난로 경매도 펼쳐졌다. 2일째 난로경매에는 전년도 수상작인 '선라이즈 난로'가 나와 관람객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두 개의 원을 겹쳐 미학적인 면도 고려한 선라이즈 난로를 내놓은 이정호 씨는 "동료 가운데 난로를 제작하다 다친 친구가 있다"며 "오늘 경매 수익금은 그 치료비로 쓰일 것이다"고 밝혀 난로만큼이나 훈훈한 마음씨를 보여줬다.

이 밖에도 어린이, 청소년들의 적정기술과 환경감수성을 높이기 위한 체험들도 인기를 끌었다. 충북 보은 대장간 유동렬 대표가 직접 알려주는 뚝딱뚝딱 대장간 체험, 문화창작집단 만들이와 함께 하는 적정한 자전거포, 라이터나 성냥없이 불을 붙여보는 불놓기 체험, 난로를 활용해 도자기를 만드는 가마 체험 등이 성황을 이뤘으며, 자연소재로 만든 생태놀이터와 적정기술 장난감, 전래놀이 등에는 아이뿐 아니라 어른들의 참여도 많았다.

'나는 난로다'는 전국에서 대안에너지와 적정기술로 손꼽히는 완주군이 지역사회와 비전을 나누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중요무형문화재 소병진 소목장의 전주 버선장, 전주 애기장, 전주 이층장 등 지역의 전통 목공 연장, 고재목을 전시해 지역문화를 알렸으며, 완주의 예술가들이 로컬 재료로 만든 제품들을 내놓는 장터도 열렸다. 고산 아줌마 밴드 '컨테이너'와 지역 음악가가 함께한 밴드 '날씨'의 공연으로 사이사이 버스킹이 펼쳐져 주민들과도 함께 만들고 진행하는 지역 축제로도 자리매김했다.

점점 더 많은 난로들이 출품되며 적정기술 실현의 장이 되고 있는 '나는 난로다'. 환경은 물론, 에너지와 지역사회 공동체까지도 한데 모아 따뜻하게 덥힌 이 축제는 우리가 당면한 환경 문제에의 대안들이 넘쳐나는 즐거운 장터다.
▲ 나는 난로다는 완주 지역민, 지역예술가와 함께 하는 로컬마켓도 열어 마을공동체와의 연대를 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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