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곡절 끝에 남북은 차관급 당국회담을 하기로 합의했다. 11월26일의 남북 실무접촉에서 내달 11일 차관급의 당국회담을 개성공업지구에서 개최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8월의 군사충돌 위기를 넘긴 남북이 8.25합의의 가장 중요한 항목인 남북 당국회담에 합의한 것은 남북관계 정상화의 귀중한 전기를 만든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당국회담에 합의했다고 남북관계가 바로 정상화되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간 남북관계의 대립과 불신의 골이 너무 깊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번 회담에서 다시금 회담대표의 격문제로 난항을 겪은 것에서도 충분히 드러난다.

이번 실무접촉에서 남북이 차관급을 단장으로 하는 회담에 합의한 것은 격 문제에 대한 상호 의견 차이를 우회하여 일단 당국간 접촉을 유지할 수 있는 동력을 남겨두려는 의사로 읽을 수 있다. 서울이나 평양이 아니라 개성을 당국회담의 장소로 정한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라고 생각된다.

문제는 무엇을 논의하고 어떤 합의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 정부가 제기하고 싶은 문제는 아마도 이산가족문제의 보다 근본적인 해결과 박근혜 대통령의 관심 사업인 DMZ평화공원 조성, 그리고 천안함사건과 연평도 폭격 등에 대한 북한의 시인과 사과 등일 것이다.

반면 북측 당국은 금강산관광 재개를 집중적으로 제기하면서 한미합동군사훈련 중단과 우리 정부의 대북 적대정책 전환 등을 포괄적으로 거론할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5.24조치 해제문제가 핵심안건이 되리라 예상하지만, 이는 북으로서도 매우 껄끄러운 문제이다. 왜냐하면 5.24조치는 천안함사건 등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북으로서는 책임문제와 사과문제가 걸려있는 데다가 실제로는 5.24조치의 주요조항들이 이미 사문화되어 있는 상황을 북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현실적으로는 남과 북이 각자 가지고 있는 가장 현실적인 협상카드를 교환하는 수준이 최선의 합의인데, 그것은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와 금강산관광 재개의 교환이다. 이것 이외에는 남이나 북이나 상대에게 더 내놓을 만한 카드가 마땅치 않고 또 그 이상을 얻으려 할 경우 자칫 접촉의 모멘텀 자체가 깨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남북이 각각 남북관계를 국내정치에 적극 활용하고 있는 상황도 작용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로서는 내년 총선 이전에 남북관계의 가시적 성과를 얻어내는 것이 절실할 것이고, 북으로서도 5월로 예정된 36년만의 제6차 조선노동당대회를 앞두고 남북관계에서 금강산관광 재개라는 성과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국내 정치에 이용하기 위한 것이든 아니든 남북관계에서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와 금강산관광 재개가 합의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우리 정부가 일부 보수세력과 보수언론의 분위기에 휩쓸려 북에 무리한 협상조건을 내걸어 결렬을 유도하고 이를 반북공세로 연결하여 국내정치에서 보수 결집과 반대세력 공격의 반사이익을 노리는 상황이다.

이러한 우려를 기우로만 치부할 수 없는 것이, 과거 유신체제의 등장이 북한과의 극적인 7.4공동성명 이후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극적인 남북합의에 뒤이은 급전직하의 파국은 남북관계의 오랜 전형의 하나였다.

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