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농사, 도시농업

▲ 전환마을은평부엌 '밥·풀·꽃' 로고.
▲ 은평 게릴라 가드너. 버려지는 생활용품을 활용해서 아름다운 정원 텃밭을 만들었다.
순환하는 삶은 가깝다.

맹추네 농장은 도시농부들의 텃밭공동체이다. 이름답게 맹추처럼 남지도 않고, 몸은 고된 농사를 몸에 익히는 삶의 방식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도시농부학교 출신의 10여 명이 농사를 짓다가 분양받은 텃밭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서 근처에 1000평 정도를 임대해서 3년째 유기농으로 가꿔오고 있다.

처음엔 돌 반 흙 반이던 이 척박한 땅을 삽과 쇠스랑 하나로 갈아엎어서 밭을 만들었다. 첫해는 풀도 나지 않았는데 지난해에는 흙살리기를 한다고 나뭇잎도 넣고 오줌액비를 넣어 주었더니 밭의 생태계가 제법 다양해 져서 지렁이들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하우스 안엔 적정기술을 이용한 화목난로가 적은 나무로도 하우스를 따뜻하게 데워주고, 생태화장실엔 냄새도 없이 똥을 쑥쑥 발효시켜 양질의 퇴비를 만들어 내고 있다. 마당에 태양광 환풍기를 이용한 건조기에는 데친 봄냉이를 꼬들꼬들하게 차로 말리고 있다. 닭장에는 알을 품은 암탉을 지키는 수탉의 경계가 삼엄하다.

맹추네 농장에서는 버려지는 것도 불필요한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제자리에서 제 몫을 하며 순환하고 있다. 이 곳은 멀리 어느 산골마을 이야기가 아니라 도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다.

자급하는 삶이 가깝다.

2000년 영국의 트럭파업으로 인해 도로가 봉쇄되자 도시로의 먹거리 공급에 차질이 빚어졌다. 영국정부가 런던이 전쟁이나 석유의 공급중단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을 계산해 본 결과 겨우 3일, 즉 9끼를 버틸 수 있다는 결과를 얻었다고 한다. 국가식량자급도가 거의 100%에 가까운 영국도 이러한데 식량자급도가 20%대인 한국의 경우는 단 3일도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먹거리를 포함해서 에너지마저도 모두 시골로부터 가져와서 도시에서 싸게 공급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바로 공평하지 않은 방식으로 생산된 먹거리들이 도시로 유통되어 우리 식탁에 오르는 것이다. 얼굴이 있는 가까운 곳에서 나는 먹거리를 소비하는 것도 좋겠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될 수 없다. 식량정책의 가장 공정하며 안전한 길은 단 1%라도 스스로 자급하는 일이다.

문전옥토(門前沃土)는 가깝다.

농지가 없는 도시에서의 자급은 물론 어려운 일이다. 도시텃밭, 주말농장, 빌딩옥상, 산기슭, 집앞의 상자텃밭 등에서 농사를 짓는 도시농업인구가 150만명이라고 한다. 이들이 자급하는 비율은 높지 않겠지만 도시가 먹거리사막(Food Desert)이 아니라는 증거이기도 한 것이다.

은평구에는 쓰레기 배출일 밤마다 모여 동네를 한바퀴 돌며 생활쓰레기를 주워 모아 재활용 텃밭상자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예쁘게 리싸이클링해서 필요한 공간에 텃밭상자를 분양해 준다. 이들은 스스로를 게릴라 가드너(Guerrilla Gardener)고 부르며 도시의 빈땅이나 버려진 공간에 꽃을 심기도 하고 먹거리를 기르기도 한다. 누구도 허락하지 않았지만 모두를 위한 밭을 만들고 홀연히 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작물이 자라면 가까운 곳의 누구라도 수확해서 먹을 수 있다. 게릴라 가드닝처럼 도시농업은 사실 공유지를 만드는 일이다. 농사라는 것은 개인의 먹거리를 스스로 자급하는 것 같지만 사실 지구를 위한 공유지를 만드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아스팔트 대신 먹거리가 자라는 공간이 많아질수록 도시의 삶의 조건은 더더욱 나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마을은 가깝다.

향림도시농업공원(구 갈현텃밭)은 한국 최초의 퍼머컬처(Permaculture)식 농장으로 도시 한가운데 있다. 마을 안에 주차장도, 번듯한 건물도 아니라 농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동네사람들이 마을 가운데 동네텃밭을 만든 것이다. 지난 5년간 행정과의 긴 설득 끝에 자연에 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자연을 닮은 순환하는 구조를 가진 퍼머컬처식 텃밭을 마을 가운데 만든 것이다. 그래서 마을 가운데 생긴 텃밭은 마을사람들이 모이는 동네의 중심이 됐다.

함께 농사짓고 마을의 대소사도 함께 고민하다 보니 다른 도시텃밭과는 뭔가 다른 분위기가 난다. 다른 텃밭들의 도시농부들은 멀리서 와서 농사를 짓다보니 바로 옆에서 농사짓는 사람과 인사도 없는 경우도 허다하고 레저처럼 잠깐 자기 가족끼리 와서 자기일이 끝나면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갈현텃밭은 마을 안에 있다 보니 동네사람들과 인사 나누는 일만으로도 시끌벅적하다. 이렇게 안면을 튼 사람들은 품이 많이 들고 어려운 논농사나, 콩과 같은 작물들을 함께 심고 가꾸는 작목반도 만들었다. 농사짓는 것뿐만이 아니라 함께 갈무리해 장도 담그는 공유장독대와 공유밥상까지 생겨나게 되었다. 이렇게 차츰 공유관계들이 생겨나니 자연스럽게 마을 공동체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모인 도시농부들이 은평에 로컬푸드친환경식당 전환마을부엌 '밥·풀·꽃'을 만들었다. 도시농부들이 자급을 넘어 생산자가 되어 마을 식당에 먹거리를 공급하고 동네 가까이서 난 아는 먹거리로 만드는 안전하고 믿음직한 음식이 차려지는 도시 최초의 로컬푸드 식당을 만든 것이다. 봄에는 동네텃밭에서 나는 약이 되는 풀로 채집밥상을 차려보기도 하고 옆집 도시농부 아무개가 길렀다는 채소들이 밥상에 오를 것이다. 이를 통해 도시농부가 직업이 되는 사람들도 많아졌으면 좋겠다. 저녁에는 매일매일 동네에서 손맛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돌아가며 저녁 술상을 차린다. '밥·풀·꽃'은 자연스럽게 동네부엌이 되고 마을사람들 누구나 요리하고 함께 나누는 자리가 될 것이다.

도시농업은 가깝다.

도시농업은 버려진 스티로폼 박스 안에서 길러낼 수 있고, 텃밭이 없다면 누군가의 도시텃밭 고랑에 흔하게 자라는 풀을 뜯으면서도 시작할 수 있다. 도시농업은 자연과 소통하겠다는 것이며 생태적 전환을 하겠다는 것의 시작이다. 땅이 없어도 경험이 없다 해도 도시에서도 누구나 농부가 될 수 있다.

내년 봄 작은 화분 하나에라도 첫 씨를 뿌려보자. 원불교 마음짓은 도시농부학교의 3기가 되어보는 것도 좋겠다. 생산성, 효율성, 능력주의가 제일인 물질 만능시대에 우산이 되어줄 가할 거대한 나무가 자라날 것이다.
▲ 풀로 차린 밥상. 주변에 자라는 풀들을 이용해 와일드푸드(Wild food) 잔치를 열었다.
▲ 전환마을은평 대표 소란(유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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