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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 / 부산울산교구 당감교당 김현복화 교도
신앙인 / 부산울산교구 당감교당 김현복화 교도
  • 최명도 기자
  • 승인 2015.12.18
  • 호수 178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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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당 가는 날, 여전히 기다려집니다"
법호식 연기, 시신기증, 49재비용 선납 등
베풀었다는 상없는 공도자의 삶 일관
당감교당 광타원 김현복화(90·光陀院 金賢福華) 교도. 원기61년에 입교한 그는 당감교당 창립주로 초대교도회장을 22년간 역임하며 신심, 공심의 삶을 일관했다. 당시 교도부회장이었던 경주교당 이활선 교도와 그를 찾았다.

"친구소개로 입교했는데, 교당에 오면 마음이 참 편안했습니다. 교도들 만나는 것도 좋았습니다. 일제 시대에 여고를 다녀 무릎 꿇는 것이 버릇이었는데, 교무님은 늘 편안하게 앉으라고 했지요." 39살 되는 해 남편을 잃은 그는 남편이 운영하던 유리 가공업을 맡았다. 사업은 번창했고, 슬하 삼남매를 서울에 있는 대학교까지 보낼 만큼 살림에 여유가 있었다. 교당에 주는 것은 뭐라도 아깝지 않았던 그는 법회 참석은 물론 교화후원금을 아낌없이 지원했다. 근검절약하는 교무의 모습을 보며 교무 봉양에도 정성을 다했다.

"처음부터 교무님에게 잘하고 싶었습니다. 교무님을 보면 참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단 초창기라 교무와 교도가 서로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조심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는 교도회장으로서 교무의 뜻을 무조건 받들었다. 때로 교도들이 섭섭해 할 때도 있었지만, 그는 교무의 본뜻을 알고 이해했다. 당시 박정혜 교무의 조카 2명을 초등학교부터 전문대학까지 육영사업으로 후원을 한 것도 그 연장선이다.

그는 그의 법호수여식을 수년간 미뤘다. 그와 같은 동년배 교도들의 법호가 나올 때까지 보류했다가 합동법호수여식에 동참했다. "혼자만 법호를 받기보다 친구들 법호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어요. 교무님은 법호식을 해야 한다며 난처해했지만, 함께 받으니 기분이 더 좋았습니다"

인과보응의 이치와 생사가 둘이 아닌 이치를 깨달은 그는 언제든지 이생을 떠날 수 있게 죽음의 보따리도 이미 챙겼다. 자신이 고인이 됐을 때 치를 49재 재비 일천만원을 미리교당에 납부한 것. 후배교도에게 자신의 수의가 어디에 있는지, 재에 참석한 교도들의 공양과 선물까지 정성을 다하도록 부탁해뒀다. "잠옷으로 갈아입으며 기분 좋게 자려고 합니다. 항상 자는 잠에 여한 없이 떠나고 싶어요. 사후에 시신기증도 약속했습니다. 몇 년 전 자녀들에게 동의를 구하고 서명도 받았지요. 보잘 것 없는 내 몸이 조금이라도 의학발전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교도로서 행복한 삶을 산다는 그는 만나는 사람에게 '교당가자'는 말을 자연스레 건넨다. 원로교도로서 교당에 부임한 교무님이 무슨 반찬으로 식사하는지, 교당청소는 누가 하는지, 신입교도는 어떻게 챙기는지 주인의 마음으로 살피는 그는 "교법이 참 좋아 내생에도 믿고 싶습니다"며 신앙의 기쁨을 전했다.

그는 매일 조석 심고와 아침기도를 마치고, 되도록 일상수행의 요법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몸이 예전 같지 않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사경도 한 페이지씩 하려고 한다.

"함께 활동한 이활선 교도에게 특히 고마움을 전합니다. 회장인 나의 뜻을 잘 따라줬고, 덕분에 기도와 봉공생활을 재미있게 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이 교도는 "저처럼 젊은 교도들도 신바람 나야 한다고 회장님은 행사 준비 모임 시 식사비용과 성지순례 등 각종 후원비를 아낌없이 지원해 주셨습니다. 교당봉공회 물품판매 할 때도 손수 구매해서 지인에게 나눠주는 일이 많았습니다. 교도들 힘내라고 요청한 금액보다 많은 금액을 항상 지원해 주시니 마음 편하게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고 전했다.

교화후원금을 전달할 때는 언제나 당사자를 불러 조용히 건넸다. 이러다보니 같이 활동했던 임원들과 교도들만 아는 후원금이 많았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상없는 공덕주였다.

원기69년 봉불식을 거행한 당감교당은 열악한 교당여건을 극복하고자 당시 교도들이 저공해 비누공장을 운영하는 등 신축기금을 마련해오다 원기85년 현재의 교당 건물을 구입했다.

"종교인에게 땅과 건물을 팔지 않으려던 시절, 나와 부회장은 모 기업체의 회장과 임원이라고 땅 주인에게 소개했지요. 그렇게 교당 건물과 부지를 구입한 것도 이제는 추억이 됐네요"

그는 금요일부터 기도비와 유지비 봉투를 정성스럽게 준비해놓고 법회 날을 기다린다. 여전히 그는 교당에서 담근 멸치액젖 담을 빈 물통을 챙겨서 교당에 주고, 교무의 밑반찬을 만들고 있다. 교도로서 변함없는 일상을 지내는 것이다.

"교당 가는 날이 기다려집니다. 화장하고 좋은 옷 입고 교당 가면 교무님 설법도 듣고 교도들도 만나는 것이 즐겁고 행복합니다. 당감교당 교도가 많이 늘어나고, 더 크고 편리한 교당을 짓는 소망이 이뤄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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