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로서 허탈감 밀려와

올 한해 가장 인상 깊었던 취재 처를 택하라면 교헌개정특별위원회와 지방행정연수원 최두영 원장을 꼽고 싶다. 먼저 교헌개정특별위원회 취재는 위원회 출범부터 해산을 결의한 회의까지 1년7개월간 쫓아다녔다. 수위단회의 요청으로 교헌개정 쟁점사항을 1년간 지면을 할애해 보도하기도 했고, 각 회의 의결사항이나 토론내용을 생생하게 보도해 왔다. 결과 교헌개정 작업이 성과 없이 끝나면서 기자로서 허탈감과 무력감이 밀려들었다. 출발부터 너무 큰 그림을 그린 탓인지 높은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변한 취재였다.

최두영 원장은 총부를 방문해 경산종법사로부터 '성제'라는 법명을 받았다. 그는 뛰어난 역량과 합리적인 성품으로 주변의 신망이 높았다. 하지만 중국에서 연수 중이던 공무원 9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자 책임을 통감하고 투신해 자살한 사건은 나에게 충격이었다.

나세윤 기자


울다가 웃다가

마음공부 코너를 담당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현장은 부산방언회와 조계종 상도선원이다. 부산방언회 취재시 정인성 교도의 훈련도량인 경남 함안 성학당을 찾았다. 낮은 천장 탓에 촬영 내내 기둥에 수없이 머리를 부딪쳤다. 눈에서 불이 번쩍하고, 머리가 얼얼할 정도로 아팠다. 하지만 저쪽에서도 '쿵', 이쪽에서도 '쿵' 소리가 나니 서로 웃으며 '주의심 챙기자'는 말로 대신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앞이마를 만질 정도다.

'하트스마일명상'은 미산스님의 따뜻한 미소가 매우 인상적이다. 손을 머리 위에 올려 큰 하트(♡)를 그리고, 가슴에는 앙증맞게 작은 하트를 만드는 모습이 천진해 미소가 절로 나왔다. 그러나 웃을 수 없었다. 선객들의 표정이 얼마나 진지한지. 기자도 직접 시연에 참가해 보니 사랑의 기운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확산되면서 따뜻한 기운이 방사됨을 체험했다.

안세명 기자

교단의 중심

"신문받고 감동받아 눈물이 나서 많이 울었어요. 감사하고 언재(제) 만나면 풍천장어로 쏠깨(께)요 사랑해요." 익숙치않은 전화기 자판을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눌러, 서툰 문장이지만 당신의 마음을 전하는 교도의 문자. 그 진한 감동에 두 손 합장으로 답례한다.

"의미 있는 보은의 역사를 쓰고 계시네요. 자랑스럽습니다." 간결하지만 큰 울림 주는 격려문자에는 마음의 힘을 얻기도 한다.

주말에도 달려가야 하는 현장 취재, 때론 중압감으로 느껴지는 인터뷰와 기획기사 작성, 매번 긴장하게 되는 신문편집과 교정, 일주일에 한 번씩 원불교신문을 만드는 일이 그리 녹록치 않다. 그럼에도 원불교신문을 정독하며 격려 보내주는 독자들과 광고후원으로 응원 보내주는 광고주들이 있어, 이 일이 행복하다.

'〈원불교신문〉은 교단의 중심이다.' 이 말을 마음에 각인하며, 오늘도 취재현장에 나선다.

이여원 기자

순간순간 희로애락 공존

기자에게 가장 어려운 취재 여건은 날씨다. 억수같은 비, 짙은 안개, 함박눈은 차선을 분간하기 어렵게 만든다. 가끔 중앙선을 침범해 깜짝 놀라기도 한다. 또 보도 자료를 요청해야 할 상황이면 미안해진다. 행사의 분주함과 피로를 알기 때문이다. 기사를 작성해 입력했지만 지면사정에 따라 40%가 잘리는 상황도 많다. 사진마저도 나가지 않게 될 때의 그 미안함이란…. 올해는 47주 신문이 발행됐다. 원로교무님들의 교화대불공에 관한 내용을 정리하며 '이런 내용 나가면 교도들이 싫어 할 건데. 괜찮겠냐'는 전화를 받기도 했다. 원로교무님들의 '겸손과 사양지심'에 훌륭한 교화 사례가 보도되지 않기도 했다. 숨은 의미를 드러내고자 더 고민하며 기사가 완성된다. 교단사에 길이 남는 작업이기에 더 신중해진다.

이성심 기자


여래(如來), 여래다

친견제자와 만남에 취재가 어려운 전이창 원로교무를 취재하겠다고 했다. 기자의 패기랄까. 하지만 첫 만남은 보기 좋게 거절 당했다. 얼굴도 마주하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며칠 후 시봉자로부터 허락이 떨어졌다. 예비교무와 함께 약속 시간에 맞춰 수도원에 갔다. 그런데 웬 걸. 복도에서 딱 마주칠 줄이야. 구순의 나이에도 내 손을 강하게 뿌리치는데 소위 '문전박대' 당할 상황이다. 순간 머릿속은 깜깜해지는데 오히려 원로교무에게 바짝 달라붙었다. 방문을 열고 방에 들어서는 원로교무 뒤를 재빨리 따라갔다. 진입 성공! 이제부터 시작이다. 길어야 20분! 마음이 급하다. 예비교무에게 질문을 넘기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성공이다. 일어서는 내게 스승님은 말했다. "우리 회상은 천여래만보살 회상이다. 여래를 꿈꿔야 한다."

강법진 기자


기자들의 자존심

얼마 전, 종교계의 '저출산 극복 위한 실천 선언문' 발표 현장을 취재 갔다. 7대 종단 수장들과 정관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자리라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여기까지 와서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못 건지면 어떡하나?' 싶어 두 눈 딱 감고 자리를 비집고 들어갔다. 앞쪽 가장자리 테이블에 누워서라도 찍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밀고 들어갔다. 그런데 실수로 연륜 있고 성깔 있어 보이는 기자의 카메라를 살짝 치고 말았다.

기자에게 카메라란 자존심이나 다름없다. 예민해 있는 이 상황에 카메라를 쳤으니 욕이나 한번 제대로 얻어먹게 생겼다. 나는 순간적으로 위에 걸친 점퍼를 열어젖히며 성직자 정복을 살짝 비췄다. 그리고 "죄송합니다"라고 하니 일그러졌던 표정이 풀린다. 같은 기자로서 미안했지만 자리 사수는 양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정성헌 기자

'해외교화 관심필요'

'여행으로 만나는 해외교당'을 본 교도들은 "해외 취재가 부럽다"고 했다. 사실은 메일로 질문지를 보내고 답을 받는다. 현재 23개국, 교역자 137명이 해외교화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 중 네팔의 카투만두 이법안 교무님과 취재를 마친 4월25일 서로 안부를 전했는데, 그날 오후 네팔에 지진이 일어났다. 유선 전화로 이 교무의 안부를 확인했고, 2차 지진이 발생해 사정이 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당시 네팔 현지인과 교무님들이 더 이상의 피해를 입지 않도록 기도를 올렸다. 해외에 있는 교무들이 "국내 교무들 교화활동이 더 힘들겠다"는 걱정을 할 때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앞으로 칠레, 캐나다, 카자흐스탄, 일본, 아르헨티나, 브라질, 베트남, 인도, 태국, 몽고, 라오스, 호주, 케냐의 활동을 소개할 예정이다. 해외 교화에 많은 관심과 지원을 바란다.

최명도 기자


세상이 그대를 잊을지라도

이웃종단들과 손 맞잡느라, 햇빛교당 올리느라 바쁜 해였다. 그리고 우리는 세월호를 기억하는 마음도 멈추지 않았다. 매주 광화문 세월호 종교인 부스에서 열리는 기도식에도, 유가족들에게 따순 밥 한끼를 공양했던 진도 팽목항에도, 익산 총부에서 진도까지 세월호 참사 1주년 기억순례를 떠난 길에도 원불교가 있었다. 그래서 다행이었으며, 카메라 너머 눈시울은 번번히 뜨거웠었다. 유가족이며 시민들은 '원불교'를 따뜻함과 고마움으로 기억하고 있었고, 그렇게 우리는 세상을 위로하는 종교 본연의 역할을 묵묵히 해내고 있다. 광화문의 원불교 기도식은 여전히 목요일 저녁에 열려 이미 50번째다. 방방곡곡에서 참여한 교무와 교도들이 바위처럼 앉아 목탁을 두드린다. 몇 번은 취재도 아닌데 달려갔다. 때때로 간절한 기도들은 기자마저도 진실로 변화시킨다.

민소연 기자


세 켤레의 양말

지난해 남다른 근검절약으로 정성을 모아 원100성업에 동참하고 있는 유성원(종로교당·88)교도를 취재했다. 고무신이 떨어지면 떨어진 부분을 잘라 욕실화로 사용하던 근검저축의 삶에 큰 감동을 받았다.

며칠 뒤 본사 사무실로 그가 찾아왔다. 맨발로 인터뷰를 하던 내 모습이 아른거려 양말을 전해주고 싶었다는 그는 지팡이를 짚고 30여 분 거리를 걸어왔다. 소중한 3켤레의 양말을 전해 받은 나는 그 어느 해보다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었다.

10월30일 정화원로수도원의 정화축제에서 어디선가 익숙한 뒷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유성원 교도였다. 나를 정확히 기억해 내진 못했지만 손을 잡고 안부를 나누니 1년 전 그가 전해주었던 소박하지만 따뜻했던 마음이 오롯이 되살아났다.

보라색, 흰색, 검정색 세 켤레의 양말… 현대 사회에서 느끼기 힘든 온정들이 이 세상을 따뜻하게 녹여주는 것 같았다.

최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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