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현종 교사 / 원광고등학교
대부분의 일반계 고등학교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학교는 새 학년 새로운 학급을 3월이 아닌 겨울방학 때부터 시작하고 방학이 아닌 방학을 맞이한다. 일반계 고등학교라서 방학 때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수업하고 심지어 밤늦게까지 자율학습도 하기 때문이다.

내가 3학년 8반을 맡아 새로운 담임교사와 학생으로 한 해를 시작한 날도 어김없이 1월 2일이었다. 반 아이들 명단을 받아 들고 설레는 마음과 기대감으로 아이들 명단과 성적을 훑어보았는데, 한 장의 A4 용지에는 2학년 2학기 성적만 나와 있어서 아이들 전체 성적을 알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그래서 성적 담당 교사에게 부탁을 해서 아이들 전체 내신 성적을 받아 파악했는데, 아이들 성적이 아주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명문대를 가겠다고 또 의대를 가겠다고 큰소리치는 아이들 성적치고는 너무 모자랐다. 어느 순간부터 기대감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불안한 마음과 부담감이란 녀석이 채워가고 있었다.

특히 우리 학교 부동의 1등과 2등이었던 이군과 윤군의 성적을 보고서는 실망감이 너무 컸다. 이 두 녀석은 성만 다를 뿐이지 이름이 똑같았고, 둘 사이에는 서로를 의식하고 또 보이지 않는 경쟁도 상당했던 녀석들이었다. 이군은 울산대학교 의대를 윤군은 서울대학교 기계항공공학과에 진학하기를 희망했는데, 오랜 진학지도 경험으로 본 내 판단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그렇게 두어 달을 보내고 3월 중순쯤 서울대학교 입학처장이 '지역균형 전형'은 성적을 보지 않겠다는 말을 했다. 성적을 반영하지 않는다면 이군을 서울대 의대에 지원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고 이군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군아 서울대 가자." "저 공대 안 가요." "공대 말고 의대 가자고." 이때 이 녀석의 눈은 '선생님 미치셨어요' 하는 눈빛으로 나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황당해하는 녀석과 계단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수능까지 고려해서 과학 과목 하나를 바꾸는 게 어떻겠냐고 부탁을 했다. 그 때에는 수능으로 서울대학교에 진학하려면 과학 과목이 겹치지 않게 3과목 치러야했기 때문이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겠지만 녀석은 그렇게 해 보겠다고 했다.

그러나 문제는 윤군이었다. 이군이 서울대학교에 원서를 넣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안 했었고, 지역균형 원서는 당연히 본인의 몫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 흐르는 대로 흘러갔더라면 이군은 성적에 맞춰 적당한 의대에 원서를 넣었을 것이고, 윤군은 서울대 지역균형 수시 전형에 원서를 넣었을 것이다. 확률이 거의 없어 보이는 무모한 제안을 하지 않았나 하는 미안함과 또 한 아이에게는 내가 뭐라고 끼어들어서 인생의 큰 기회를 빼앗았나 하는 생각에 가슴속에 큰 돌덩이 하나 지니고 있었고 밤잠을 설치는 날도 더러 있었다. 특히 윤군과 진학 상담을 하면서 낙담하는 녀석의 눈빛과 눈물을 여러 차례 보면서 마음속의 짓누름은 시간이 갈수록 더해만 갔다.

어쩔 수 없이 윤군은 일반전형으로 원서를 넣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이 3학년 1학기 성적이 좋아 조금의 내신 평점을 줄일 수 있었지만 그래도 서울대학교에 진학하기에는 조금 부족해 보였다.

일주일 정도 고민 끝에 윤군의 과를 힘들게 결정하고 두 녀석의 자기소개서를 봐주고 추천서를 작성하는 과정은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보통 하루 이틀정도면 자소서, 추천서를 작성했었는데 그때에는 거의 열흘 정도 아이들 원서에 매달렸었다. 글을 보고 또 보고 수정하고 또 수정하고 마치 작품을 대하는 장인처럼 글을 보면서 미안하고 아파하며 불안함 마음에 온갖 정성을 들였다.

다행히 내 마음 편하라고 하늘에서 내 마음속 돌덩어리를 치워줬다. 두 녀석 모두 내가 바라는 대로 진학을 했고 또 우리 반 녀석들 대부분이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학 그리고 학과에 진학을 하게 됐다.

가끔씩 나에게 질문을 하곤 한다. 비슷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어떤 선택을 할까? 힘들었던 기억이라 다시는 오지랖 안 부리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아마도 내 성격을 보자면 결국 마음속 돌덩어리를 품고 살지 않을까 싶다.

솔직히 '교육' 이 두 글자 갈수록 어렵고 힘들게 느껴진다. 정답도 모르겠다. 그러나 '처처불상 사사불공'이라고 했던가? 단지 이 마음 간직하며 아이들 생각하고, 게으름 피우지 않고, 순간순간을 열심히 살다보면 나중에 시간이 한참 흘러 교사로서의 내 모습을 뒤돌아볼 때 후회하는 마음은 조금이라도 덜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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