但願家家長富足 다만 내가 원하는 것은 그저 집집마다 풍족한 것
男不啼寒女不飢 남자는 추위에 울지 않고 여자는 굶주림에 울지 않기를
輕舟作商重船歸 빈 배로 장사 나간 상인은 만선으로 돌아오고
大牸引犢鷄哺兒 큰 소는 송아지 끌고 닭은 병아리 먹이 주기를
麥穗兩歧稻早熟 보리 이삭은 두 줄기로 패고 벼는 일찍 익을 것이며
拾綿盈筐蠶滿室 면화는 광주리에 수북이 거두고 누에는 방에 가득하기를
秋來及期償官租 가을엔 기한 내에 관아에서 빌린 곡식을 갚고
賦餘將取作裙襪 세금 내고 나면 치마나 버선을 장만할 수 있기를
終年不見吏剝門 한해 내내 아전이 문 두드리는 것을 보지 않고
巷閭安閒狗不驚 길거리가 편안하고 한가하여 개가 짖는 일 없기를


'한해를 비는 노래(祈歲詞)'-남공철(南公轍 1760-1840 조선 후기의 문신)

남공철의 본관은 의령, 호는 사영(思穎) 또는 금릉(金陵)이며 부친에 이어 대제학을 지냈고 정조 때 영의정을 하였다. 당대 제일의 문장가로 비석에 많은 글씨를 썼으며 '고려 명신전', '금릉집' 등이 전한다.

이 시는 산청의 현감이던 남공철이 1788년 설날에 한 해 동안 나라와 백성이 잘 되기를 빌면서 쓴 작품이다. 하지만 시의 내용을 뒤집으면 당시 조선 후기의 백성들이 얼마나 시달렸는지 금방 나타난다. 예컨대 '집집마다 가난하여 남자는 추위에 떨고 여자는 배고파 울부짖는다, 세금 내고 치마나 버선도 장만할 수 없다, 거리가 불안하고 소란하여 늘 개가 짖는다.'

24절기의 시작인 입춘에는 동풍이 불면서 봄이 시작된다. 설이나 입춘이 되면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려고 조선인은 입춘대길(立春大吉), 국태민안(國泰民安), 시화연풍(時和年豊) 같은 춘련(春聯)을 써서 대문에 붙였다. 금년엔 민초들이 편안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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