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생수

▲ 지수인 교도 / 원불교인권위원회

원불교 인권위원회 사무처장의 중임을 맡게 된 이후 네 번째 계절을 맞이했다. 마음공부만큼은 게을리 하지 말자고 항상 다짐하지만, 유독 길거리 등 현장의 일이 많다보니 마음처럼 되지 않아 조급함이 먼저 일어나기도 한다. 그럴 때면 후회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마음 되짚어 보는 것도 또 다른 방식의 마음공부가 아닌가하여 스스로 격려하며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다.

오늘날의 인권은 좌우 이념과 사상을 떠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는 '전 지구적 보편적 가치'로 공감되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인권이 이렇게 보편적 가치로 인정되기까지는 인권의 참혹한 시기라고 할 수 있는 두 차례의 세계전쟁이 있었다. 인류는 그 경험을 거치면서 인권에 대한 인식을 하기 시작했다.

전쟁 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민족의 다름과 장애, 사상적 차이라는 이유로 학살을 당했다. 그 일을 겪으면서 인권은 이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살아있어야 한다는 이유를 알게 됐다. 그리고 인권은 가만히 있어도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지켜 내야만이 지켜진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고, 여러 방법적 행동으로 이어지게 됐다.

간혹 인권의 범위가 너무 거창해서 우리와는 상관없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하는 분도 있다. 하지만 모든 나무와 모든 바다가 처음엔 작은 씨앗과 옹달샘으로부터 시작하듯이 인권도 사실 우리 마음속 작은 씨앗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본다. 말 한 마디, 생각 한 가닥의 주인이 나임을 잊지 않고 '역지사지'하는 자세를 견지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인권존중의 시작일 것이다.

'곳곳이 부처님이니 일마다 불공하라'는 법문에는 원불교 속 인권사상이 현실생활에서 살아 숨 쉬고 있으며, 이런 인권사상이 천하 만물에 대한 존중까지 미침을 이르고 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대립적이고 상대적인 인권을 넘어 마음의 탐진치까지 극복하는 마음의 인권까지 나아가야 한다.

이 법문에 따라 원불교 인권위는 이웃종교와 연대를 통해 사형제 폐지와 이주민 인권을 위해 일하고 있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의 존엄과 법과 제도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박탈하는 제도적 살인 '사형'을 반대하며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이주민인권협의회를 통해 인종차별금지 법제화를 위해 국회에서 법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토론회를 준비하며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존재는 차별 받지 않고 행복할 권리가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참다운 도덕은 개인·가정·사회·국가·세계까지 다 잘살게 하는 큰 법이니, 세계를 맡긴들 못할 것이 무엇이리요.(〈대종경〉 실시품14장)"라는 소태산 대종사의 말씀을 따라 원불교인들은 개인의 행복만을 위하는 신앙·수행이나 집단이기주의를 넘어 사회의 공익에 기여하는 연대활동을 동시에 이뤄가야 한다.

광화문광장에는 세월호 가족분향소가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660일도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차가운 바다 속에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미수습자가 아홉 명이 있고, 고 김초원·이지혜 선생님은 기간제교사라는 이유로 순직인정도 거부당하고 있다.

원불교 인권위원회는 세월호 광장에서 매주 목요일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목요기도회를 진행해 오고 있다. 지난해 12월 마지막날 밤에는 50회 광장기도회를 맞아 원불교문화제를 진행하기도 했다. 또한 원불교 인권위원회 사무처장의 중임을 맡은 후 처음 진행한 행사라 더 기억에 남는 '남산 평화·인권의 숲' 은 일제강점기에 우리 독립투사들을 고문하고 처형했던 장소인 남산에서 이뤄졌다. 군부독재시대에 수많은 민주투사들의 목숨이 희생됐던 곳인 이곳에서 청소년, 원불교 인권위원회 운영위원 그리고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들이 '인권 - 혐오와 표현의 자유, 그리고 국가의 역할'이란 주제로 포럼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다른 사람에게 자행되는 혐오적 표현의 위험성과 국가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여러 방안들이 제시됐다.

원불교 인권위는 그 외에도 청소년·장애인·성소수자·비정규직 또는 해직으로 내몰리고 있는 노동자들과의 연대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 원기101년에도 이러한 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고 연대의 힘이 필요한 곳에 항상 같이 할 수 있도록 정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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