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서 저술로 읽는 교사〉

▲ 원기 12년(1927)년에 발간된 〈수양연구요론〉.
교단 최초의 교재는 원기12년(1927)에 발간한 〈수양연구요론(修養硏究要論)〉이다. 양장 4×6판 73쪽으로 국한문 혼용이며, 표지에 '소태산 술(少太山 述)'이라고 하여 대종사의 가르침임을 밝히고 있다. 인쇄소는 기독교창문사, 발행소는 '전라북도 익산군 북일면 신룡리 불법연구회(佛法硏究會)'이다. 교단에 활자매체를 가져온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편찬 겸 발행인은 이경길(李瓊吉)로, 구타원 이공주(九陀圓 李共珠, 1896-1991) 종사의 호적명이다. 그는 원기9년(1924) 서울 교화를 시작할 때 대종사를 배알하여 법문을 받들고 입교했는데, 넉넉한 가세를 기울여 교단 1대 1회(12년)의 급무인 교재출판을 제공한 것이다. 그래서 이는 비매품 곧 법공양판(法供養版)이요, 대종사 법문 기록과 관련하여 받은 별호 법낭(法囊)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사실, 대종사와 구인선진이 혼신을 다하여 원기4년(1919) 완공을 본 영산성지의 방언답은 당시까지 해수(海水)가 다 빠지지 않아 소출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그래서 빚이 쌓이고 팔산 김광선·삼산 김기천 종사의 전답 등이 보증으로 잡혀, 이에 따른 각종 수모를 견뎌야 했다. 그때 구타원 종사가 이 빚을 청산하여 1대 기념사업을 성공리에 마치게 된 것이다. 당시 서울 교무가 젊은 주산 송도성 종사였는데, 나중에 전무출신을 서원한 구타원 종사가 그를 일생 스승으로 극진히 받들던 모습을 보면, 교역자 한 사람의 힘이 어떤 것인지를 여실히 증명한다.

〈수양연구요론〉의 표제는 당시 회장이었던 추산 서중안 대호법의 글씨이며, 옆에 '통만법명일심(通萬法明一心)' 곧 '만법을 통하여다가 한 마음을 밝히라'고 적었다. 책머리에 대종사 진영과 서문을 싣고, 전체를 7장으로 나누어 〈정정요론(定靜要論)〉상·하, 연구의 강령·진행조건·사연(捨捐)조건, 각항 연구 문목(問目), 공부의 진행순서로 구성했다.

〈정정요론〉은 수양방법 곧 연단(練丹)수련법을 밝힌 도가서(道家書)이다. 이는 정산종사가 스승을 찾아 전라도를 유력하다가 증산교(甑山敎)를 방문하여 증산 강일순(甑山姜一淳, 1871- 1909)교조의 무남독녀 순임을 통해 받은 것이다. 이춘풍 정사의 번역본이며, 이후 초기교단의 수행에 크게 참고가 되었고, 정산종사에 의해 원기35년(1950)대에 참고경전으로 사용하기 위해 분장보완(分章補完)하여 〈수심정경(修心正經)〉으로 이름붙였다.

〈정정요론〉이 수양법이라면, 그 밖은 주로 연구법이 밝혀져 있다. 실제로는 정신수양·사리연구·작업취사 삼학교리의 원초형태가 확실하게 드러나 있다. '연구문목'은 지금의 '의두요목(疑頭要目)', '공부의 진행순서'는 '법위등급(法位等級)'이다. 초심(初心)·발심·입지(立志)·삼학(수양·연구·취사)·세밀·입정(入靜)으로, 3급 3위의 법위단계이다. 경전인 교서(敎書)가 이루어지기 직전의 형태를 읽을 수 있다.

<원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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