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새로 배정받은 방으로 이사하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대부분 이삿짐들을 다 정리 못하고 차일피일 미뤄 왔다. 그러다가 문득 필요한 생활용품이 어느 박스에 담겨있다는 것을 생각해 내고는 그것을 풀어헤쳤다.

그 수용품을 찾기는 했지만 이미 벌여놓은 박스를 치워야 하기 때문에 나머지 수용품들까지 열심히 정리했다. 그러다보니 그 물품들과 함께 정리하지 않으면 안될 다른 물품도 생각이 나서 다른 박스도 열게 됐다. 이렇게 하나하나 정리를 하다보니 '언제 이걸 다 정리하지?'하면서 늘 가슴 한편에 이고 지냈던 많은 짐들을 모두 정리하고 말았다. 장장 6시간이나 걸렸다.

그렇다고 첫 박스를 풀면서 마음 단단히 먹고 한 것도 아닌데 이러한 일을 해내다니 신기하지 않는가! 애초 계획하고 날을 잡아도 한번에 6시간 물품을 정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할텐데 말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문간에 발 들여 놓기 효과(Foot in the door effect)'라고 한다.

말 그대로 문 안으로 들어갈 생각이나 계획은 없지만, 문을 열고 한쪽 발만 들여 놓아도 그 다음 안쪽으로 들어가기는 매우 쉽다는 이론이다.

이 기법은 마케팅 전략에서 크게 활용되고 있다. 마트 음식코너에서 무료로 시식을 권하거나, 화장품 가게 앞을 지날 때 얼굴 마사지 팩을 서비스로 제공하는 것들이 모두 이러한 심리를 이용한 것이다. 처음에는 강요나 부담을 전혀 느끼지 않게 관심을 유도하게 하는데 이것이 바로 '문간에 발 들여 놓게 하는 마케팅 전략'이다. 무료시식에 응하거나 마스크 팩을 건네 받는 것은 곧 작은 부탁이나 제의를 수락하는 것으로 일단 한 번 오케이를 이끌어 내면 다음 부탁이나 제의도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가기 쉽다는 것이다.

자의가 됐든, 타의가 됐든 '문간에 발 들여 놓기 효과'는 아무 부담없는 상태에서 일을 시작하면 그 다음은 아무리 크게 부담될 일이라도 별 거부감없이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다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심리적 원리를 보여준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이소성대(以小成大)'의 말들이 알고 보면 이러한 과학적 원리를 이미 함축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올해도 어김없이 새해 계획들을 세웠을 것이다. 지난해처럼 가다가 잘 안되면 작심삼일이니 의지박약이니 하면서 자신만 구박하지 말고, 문간에 발을 살짝 들여놔보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