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서 저술로 읽는 교사〉

▲ 제1회 기념총회 때 봉래제법 상황 재현한 모습(원기13년).
소태산 대종사를 가까이 모신 초기교단의 제자들은 매일같이 법문을 받들 수 있었다. 대각(大覺)을 통해 밝혀진 진리세계, 구세경륜을 체계화해 나가는 교리강령, 회상창립과 관련한 일과 이치 등에 대한 가르침을 직접 받든 것이다. 말씀으로 전해주고 마음으로 지도해 준 구전심수(口傳心授)의 현장이었다.

이런 법문이 원기13년(1928)에 창간된 기관지 〈월말통신〉에 수록되면서부터 문자화가 시작된다. 그리고 이를 위해 법문의 수필(受筆)이 이루어지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주산 송도성(主山宋道性, 1907-1946)종사의 〈법설수필집(法說受筆集)〉 2권이 구타원 이공주 종사의 유품으로 전한다. 양면괘지에 펜글씨로 쓴 〈수고본(手稿本)〉이며, 1권이 43쪽, 2권이 133쪽이며, 수록법문은 1권이 14편, 2권이 43편으로 도합 57편에 이른다. 표제에 붓글씨로 〈법설수필집〉, 그 아래에 주산 증(主山贈)이라 썼다. 내용 가운데 '원기16년(1931) 정리를 마쳤다'는 고무인이 찍혀 있어, 주산종사가 직접 받들고 수필한 법문을 당시에 정리해 구타원종사에게 증정한 것으로 보인다.

수록법문 가운데 연대가 분명한 것은 총 6편인데, 원기4년(1919) 봄부터 원기10년(1925)에 이르고 있다. 법문장소로는 봉래정사 10편, 영산 5편, 익산 2편, 서울과 전주가 각 1편이다. 설주(說主)를 '선생'·'선생주'라고 했는데, 익산에서 베푼 법문 가운데 '종사주'로 밝힌 것이 있다. 이 용어는 원기14년(1929) 이춘풍정사의 의견안에 의해 정해졌으므로, 그 이후의 법문이 첨가됐음을 말해준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47편의 법문 가운데 〈대종경〉에 수록된 경우가 무려 35편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서품 11장 '영산방언의 어려움(防堰之難)과 성도의 쉬움(成道之易)'을 비롯하여, 수행품 54장 '소를 탄 사람 이야기' 등의 봉래정사와 관련된 법문, 교단품 3장의 서울에서 베푼 '좋은 인연을 영원히 놓지 않는 법', 전망품 7장의 전주에서 베푼 '철모르는 사람' 등 다양하다.

주산종사의 수필법문은 이 밖에도 대종사의 일대기를 쓴 〈대종사약전(大宗師略傳)〉, 한문 수필법문집 〈법해적적(法海滴滴)〉이 있다. 대종사를 가까이에서 모시면서 가장 많은 법문을 받들었고, 육하원칙에 의해 수필하여 〈대종경〉을 구성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한 것이다. 이들 기초자료를 읽으면 상황성이 분명하여 대종사 법문을 직접 듣는 생생함, 곧 〈대종경〉 법문을 깊게 이해하는 맛이 있다.

<원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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