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태원 교사/구덕고등학교
구덕고등학교 주변에는 산들이 많고 산자락의 초입에 학교가 들어서 있다.
부산은 금정산, 백양산, 장산 등의 유명한 산들이 많지만 우리 학교 주위에도 해발 500m가 채 안 되는 높지도 낮지도 않은 아기자기하고 주위 경관이 아름다워 사계절 모두 등반하기 참 좋은 산들이 있다.

본교에 부임한 이후 해마다 봄에는 5월, 겨울에는 12월에 사제동행등반대회를 실시해 왔는데 그때마다 학생들과 교사들의 반응이 달랐다.

학생들은 처음부터 힘들게 왜 산을 오르느냐고 불평했다. 우리 학교가 남자고등학교가 맞나 싶을 정도로 교사들은 거의 대부분이 좋다고 말은 하면서 실제 참여율이 저조하다. 교실과 현장은 달랐다.

2년 전 크리스마스이브 날 등반대회를 교지편집부 학생들의 취재 중심으로 도중 듣고 나눈 이야기들을 풀어봤다.

학생1 "학교행사 일정 보는데 등반대회가 있는 거임. 뭐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학기가 끝나가는 데도 등산을 안 가는 거임. 그래서 아 취소 됐나? 하고 은근히 기뻐했음. 근데 매달 급식표 나오잖슴? 고등학교의 낙이 급식표 보면서 맛있는 거 나오는 날 메뉴 체크하는 건데, 체크하다 보니 크리스마스이브에 석식이 없는 거임. 그래서 담임 쌤한테 '이브에 야자 안 해요?'라고 물어 봄. 그러니깐 쌤이 하시는 말이 '아 그날 등반대회가 있어서 야자 없다'이러는 거임. 이브 날에 집에 일찍 가봤자 할 일도 없고 그냥 적당히 올라가다가 내려와서 친구들이랑 교실에서 노가리나 까다가 집에 갈려고 했는데."

이 학생은 여자친구가 없다고 했다.

학생2. "당일 날 오전수업을 빨리 끝내고 점심 먹고 운동장에 모임. 간단한 준비운동 후 물이랑 초코바 하나씩 받았는데 물이 겁나 차가움. 초코바는 다 얼어서 씹지도 못하겠는 거 똑똑 부러져서 그냥 먹음."
사실, 봄에는 따뜻한 물을 받았을 텐데. 원성이 자자해서 다음해엔 학생들에게 산행 시 아무 것도 제공하지 않았다.

학생3 "암튼 그렇게 승학산을 올라감. 근데 산에 딱! 도착하자마자 의욕 상실함. 왜냐고? 눈 오고 녹은 지 얼마 안 돼서, 산이 진흙투성이였음. 같이 올라가는 애들 중에 새 신발을 신고 온 애들도 있어 단체로 부들부들 떨며 엄청 힘듬."
학생들은 뒤따라가는 쌤에게 이번 코스는 교장 쌤이 엄청 좋아하시어 혼자 등반하기 심심하니깐 우리들을 동원했다고 원성이 자자했다.

학생4 "오르는 산행만 2시간 넘다보니 남는 게 시간이라서 쌤들이랑 얘기도 하고, 친구들이랑 놀면서 꽤 재밌게 올라감. 근데 웃기는 게, 남자 쌤들은 등산용품 챙겨 엄청 폼 나게 오셔서 산을 정말 잘 타시겠구나 싶었는데, 얼마 못가서 쉬시는 거 보면 정말 우리랑 비슷하구나 싶었음."

세월이 정말 야속해!

학생5 "그렇게 정상에서 상쾌함을 만끽한 후 이제 내려가는 길만 남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들떴음. 대부분 친구들과 신이 나서 수다를 떨면서 산등성이를 따라 내려오니 마음도 몸도 가벼워졌음. 근데 역시나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를 보여주는 목소리만 큰 길치들 몇몇 학생들은 반대 방향으로 내려감. 종례 끝난 뒤 겨우 돌아오고, 무조건 추종하는 몇몇 학생들은 여자 쌤들 따라 점점 험한 길로 향하는 거임. 나중에 쌤들이 좀 돌아가더라도 편한 길로 가자고 했는데 개척정신 발휘해서 길 만들면서 엄청 힘들게 하산했음. 그냥 쌤들 말 듣는 게 답이었음."

학생6 "어쨌든 무사히 학교에 도착해서 집에 가야지 했는데 신발을 보니 가관임. 운동화에 달라붙은 진흙을 벗긴다고 화장실에서 세탁작업을 하는지라 문전성시. 덕분에 화장실청소 아주머니 왕 잔소리 잔뜩. 죄송합니다. 내일부터는 방학이라 잘 할 게요. 그리고 반별로 종례 간단히 하고 집으로 향했음. 겨울에 그것도 크리스마스 이브 날 등산을 한다는 게 충격적이고 거부감도 들었지만 막상 해보고 나니 힘들어도 좋은 추억이 되었고, 앞으로도 매년 꼭!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함."

그런데 이 학생은 다음해 3학년에 진급하므로 참가하지 못했다.

세상의 모든 일이 이렇겠지. 과정이 힘들수록 더 높이 올라갈 수 있고 성취감도 더 커진다는 사실. 이런 기회에 평소에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니 친구들, 사제지간의 관계도 돈독해지고 자신도 성숙해 질 수 있는 시간이 됐다. 앞으로 이런 기회가 자주 주어져서 입시공부로 저하된 체력도 보충하고 또 공부로는 느낄 수 없는 여러 경험들을 했으면 좋겠다. 승학산은 항상 거기에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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