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성택 원로교무
제23분은 깨끗한 마음으로 선을 행하라는 뜻이다.

復次須菩提야 是法이 平等하야 無有高下일새 是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니라.
"또한 수보리야! 이 법이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어 이것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이름하나니라."

사람이 살다보면 상대심이 자연스럽게 생기는데 상대심이 나는 순간 평등심은 사라지게 된다. 상대심이란 상대방이 나보다 낮으면 우월감이 높으면 열등감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우월감이란 관문상(慣聞想)으로 누구나 아는 쉬운 것이라고 최선을 다하지 않음을 말하고, 열등감이란 현애상(懸崖想)으로 산이 높다 하여 올라보지도 않고 포기하겠다는 생각을 말함이다.

현상 세계에서는 차등과 고하(高下)가 존재하지만 인간의 마음공부 능력이란 겉으로 나타난 세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 본원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마음의 능력이란 대공심(大空心) 대공심(大公心)을 말한다.

정신수양 공부를 통해 마음을 비워 대공심(大空心)이 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합일하게 되고, 그 마음으로 취사(取捨)를 하게 되면 대공심(大公心)의 공변된 마음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두 마음을 챙기고 챙기는 것이 마음공부이며 견성이다. 우리는 이러한 것에 재미를 진진하게 느낄 줄 알아야 한다.

以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로 修一切善法하면 卽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리라.
"아도 없고 인도 없고 중생도 없고 수자도 없는 것으로써 일체 선법(善法)을 닦으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

상(相)이 없는 텅 빈 마음으로 공부를 해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된다는 것으로 그 구체적인 방법을 대종사가 삼학으로 내놓은 것이다. 대종사는 삼학(三學)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도록 하여 동·정간에 심력을 쌓게 했다. 심력을 쌓아야 공심(公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공심(公心)은 조직과 단체를 운영해 나가는 근본적인 큰 자산이다. 이 공(公)이 아니면 단체를 운영할 수가 없다. 모든 비리는 공사(公私)를 분명하게 하지 못하는데서 나타나는데 마음공부가 깊어 큰 지혜를 얻은 사람은 사사로운 개인의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시비이해를 판단한다.

須菩提야 所言善法者는 如來說卽非善法일새 是名善法이니라.
"수보리야! 말한 바 선한 법이란 것은 여래가 곧 선한 법이 아니라고 말할새 이것을 선한 법이라 이름하나니라."

대산종사는 '공사(公事)를 하다가 어쩔 수 없는 경우의 해가 나타나면 그 손해를 자기가 떠안아야 바른 취사'라고 했다. 작은 국집에서 벗어나는 것으로써 개인의 입장에서 벗어나고, 우리 교당, 우리 기관, 우리 교구, 우리 교단을 떠나 세계의 주인이 되어야 시명선법(是名善法)을 실천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선법(善法)은 초윤리(超倫理)를 말하는 것이다. 초윤리는 비윤리가 아니라 윤리를 실천하되 윤리에 얽매이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사사(私邪)없는 대공심 대공심(大空心 大公心)이 되어야 시명선법이라 할 수 있다.

제24분은 복덕과 지혜는 비교될 수 없다는 뜻이다.

須菩提야 若三千大千世界中에 所有諸須彌山王如是等七寶聚를 有人이 持用布施라도 若人이 以此般若波羅蜜經으로 乃至四句偈等을 受持讀誦하며 爲他人說하면 於前福德으로 百分에 不及一이며 百千萬億分과 乃至算數譬喩로도 所不能及이니라.

"수보리야! 만일 삼천 대천 세계 가운데에 있는 모든 수미산왕과 같은 칠보 무더기를 어떠한 사람이 있어 가져다가 보시에 사용할지라도, 또 어떠한 사람이 이 반야바라밀경으로써 내지 사귀게 등을 수지 독송하며 다른 사람을 위하여 설해 주면 앞에 말한 복덕으로는 백분에 하나도 미치지 못하며 백 천 만 억분과 내지 숫자의 비유로는 능히 미치지 못하리라."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의 사구게는 〈금강경〉의 핵심 내용이다. 또한 같이 중요한 것은 '應無所住 而生其心'이다. 이러한 사구게를 받아 지키고 다른 사람을 위해 설해 주면 칠보보시와 비교 할 수 없는 복덕이 엄청나다고 했다.

이 부분을 잘못 이해한 사람들은 칠보보시가 별 것 아니라고 생각 할 수 있다. 육바라밀의 첫째가 보시이며, 보시는 어릴적부터 습관이 되도록 길러 주어야 한다. 24분의 대의가 복과 지혜는 비교할 수 없다고 하였듯이 〈금강경〉을 수지독송 위타인설하면 지혜가 밝아지지만 그냥 하는 보시는 지혜가 밝아지지 않는다.

사람이 죽게 되면 죽음의 길을 자기 스스로 알아서 가야 하는데 지혜가 어두우면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지 모른다.

보시는 복덕으로 유한하고 사구게는 지혜로 복덕성이기에 무한한 것이다. 부처님은 복족족 혜족족한분으로 지혜를 바탕으로 수많은 복덕을 쌓은 분이다. 〈금강경〉의 지혜는 정신적 가치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 교단이 가장 필요한 정신적 가치는 창립정신이다. 이 정신이 바탕이 돼야 대종사가 지적했던 파란고해의 일체 생령을 구원할 수 있다. 그 정신적 가치를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고 표어로써 정해 줬다. 근본이 되는 것이 무엇인줄 알아야 한다. 공부가 주(主)가 되어 사업이 따라가야 하는데 사업이 주(主)가 되어 가는 세상이 파란고해이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