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 광대무량한 낙원과 영육쌍전 실현하는 장
소태산 대종사, 저축조합 등 성공적 롤모델 제시해
사회 및 경제 등 현실적 문제 해결 좋은 대안으로

▲ 온틀협동조합원들은 정례법회를 통해 교법의 체질화와 적공에 힘쓰며 영육쌍전의 삶을 실현하고 있다.
협동조합 결성

원기96년, 만덕산성지가 있는 중길리교당에서 5년여 함께 교리공부를 하던 교도들 중 30여명이 교법의 사회적 실천을 위해 협동조합을 결성했다. 이때 즈음 나는 친 누나와 종종 싸우곤 했다. 내 누이는 전주 시내에서 23㎡ 남짓한 조그마한 커피숍을 했었다. 그곳에 가기만 가면 누이와 실랑이를 벌이곤 했다.

워낙 작아서 누구하고라도 같이 가는 날이면 혹 다른 손님들이 오면 자리를 비워줘야하는 테이블이 2개 밖에 없는 커피숍이다. 거기다 커피도 드립커피나 뭐 맛있는 커피가 아니라 캡슐커피라 기계 하나만 있으면 누구라도 만들어낼 수 있는 평범한 커피숍이었다. 그런데 뭐 하러 그런 별 볼일 없는 커피숍을 누이와 싸우면서도 갔는가 하면 그건 나의 누이가 하는 커피숍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별 볼일 없던 그 커피숍은 나에게 그리고 나와 함께 갔던 사람들에게도 특별한 곳이 돼 버렸다. 어찌나 특별하던지 커피숍 초창기에 누이와 나의 다툼마저도 그 곳에 있던 사람들을 묘하게 기분 좋게 만들었다.

그건 바로 내가 싸웠던 이유가 누이는 '돈 내지 말고 가라'는 거였고, 나는 '돈을 내야 되겠으니 얼마냐'라고 옥신각신 했기 때문이다. 싸우면서도 왠지 가슴이 따뜻했던 묘한 경험들이었다. 그렇게 몇 번을 싸우다 보니 '적당한 가격'의 합의점을 찾게 됐다. 돈을 얼마나 더 받고 돈을 얼마나 덜 낼까하고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납득이 되는 '자리이타가 되는 가격'이 저절로 정해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 자리이타의 가격이 책정되니 서로 부담감이 없어지고 커피숍은 즐거운 장소가 된 것이다. 누이에게 이득이 되는 가격은 나에게 경제적 부담을 줄 것이니 자연히 커피숍 출입이 줄어들 것이고, 나에게 이득이 되는 가격이라면 누이에게 부담이 될 것이라 내가 가는 것이 서로에게 부담이 되었을 거다.

그러나 '자리이타가 되는 가격'은 나로 하여금 종종 그곳에 가고 싶게 만들었고, 누이에게는 나의 출입이 더 반가웠을 것이다. 이런 반가움은 이것저것 가져다주는 서비스도 많아지게 됐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그러다보니 함께 간 사람들도 누이와 친구가 되니 우리에게는 그 커피숍은 정말 특별한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누이가 그 커피숍을 그만 둬 이제는 특별한 추억의 장소가 돼 버렸다.
▲ 온틀협동조합은 공동작업 등으로 자리이타의 사농공상을 구축하며 초기 교단 공동체의 삶을 구현하고 있다.

협동조합의 필요성

누이의 커피숍 얘기를 한 것은, 그 '특별한 장소'를 추억이 아닌 대사회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서다. 대사회적으로 구현이 되면 영세성도 벗어나고 사람도 살아나게 되니 그 얼마나 좋겠나? 그 방법이 바로 협동조합이다. 혹자는 '아니, 그건 가족이여서 가능한 것이고, 그게 사회적으로 되겠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맞다. 가족이어서 가능했던 것이고 가족은 그래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 정신이 병들고 사회가 병들어 동포가 서로 믿지 못하며 반목과 혐극의 사회가 되어갈 뿐 아니라, 가족마저도 물질적인 이유로 서로 원수가 되고 있다. 사회적 환경이나 물질로 인해 가족이 서로 신경을 쓰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혹 나의 가족은 현재 그렇지 않다고 해도 우리 주변에 그렇지 못 한 사람들이 정말 너무나 많으며 사회 또한 그렇게 변해 가고 있다. 나의 가족도 언제까지 홀로 안녕할 수 있을 거라고 그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이러한 문제는 급격한 물질개벽으로 인해 발생되는 부작용으로 그 문제가 생각보다 매우 심각해서 사회적 불평등, 저출산, 고령화 등을 야기하고 있다.

더욱이 현대 사회의 과도한 에너지 사용과 자원 소비는 지구 자체를 병들게 하고 있어서 인류뿐 아니라 지구 자체가 위협받게 하고 있다. 그러니 지구에서 살고 있는 한 그 누가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나?

이 심각한 문제는 자본주의 한계에서도 오는 것이다. 물론, 한국 사회가 이렇게 발전하고 급속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자본주의의 공이 매우 크다고 하겠다. 그러나 포화 상태를 넘어 과생산, 과소비에 이른 지금 자본주의는 한계치를 넘고 있다. 실제로 세계 경제는 자본주의 한계에 휘청거리고 있다. 세계의 많은 석학들이 그 대안으로 생각하는 것이 바로 협동조합이다. 우리 정부도 이 협동조합을 자본주의 4.0이라고 하며 협동조합 육성정책을 펴고 있다.

협동조합은 자조, 자기책임, 민주, 평등, 공정, 연대를 중요 가치로 알고, 조합원들은 정직, 투명성, 사회적 책임, 타인에 대한 배려의 윤리적 가치를 신조로 삼고 있다. 협동조합의 7대 원칙은 자발적이고 개방적인 조합원 제도,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운영원칙, 조합원에 의한 재산의 형성과 관리원칙, 조합의 자치와 자립의 원칙, 교육연수와 홍보활동 촉진의 원칙, 협동조합 간 협동의 원칙,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다.

어렵게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런데 매우 익숙하지 않은가? 지면상의 한계로 많은 얘기는 할 수 없으나 협동조합은 이미 100여 년 전 소태산 대종사가 이미 실험에 성공했다. 당시 조합원이라고 하는 것을 교화단으로 바꿔 초창기 교단의 모습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실제로 교화단 운영을 접목하면, 아니 제대로 교화단 운영을 하면 협동조합의 가치와 원칙을 실현하기에 매우 용이하다.

한가지 고백하자면, 원기96년 교법의 사회적 구현을 위해 고민 하던 때에 우리는 어떤 법인체로 시작 할 것인가로 고민했었다. 그때는 협동조합이 무엇인지 잘 모르던 때라 우습게도 고민을 했었다. 그런데 협동조합을 공부하면서 정말 깜짝 놀랐었다. 협동조합이 추구하는 바가 우리가 추구하는 바와 일맥상통하는 바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협동조합 공부를 하면 할수록 우리 교법에 대한 위대함이 드러났다. 부끄러운 얘기이지만 협동조합 공부를 하면서 두루뭉술하게만 느껴지던 우리 교화단법을 조금이나마 깊이 이해하게 됐다. 대종사께서는 교화단의 이치가 '단장은 하늘을 응하고 중앙(中央)은 땅을 응하였으며 팔인 단원은 팔방을 응한 것이라, 펴서 말하면 이 단이 곧 시방을 대표하고 거두어 말하면 시방을 곧 한 몸에 합한 이치'라고 했는데 우매한 내가 어떻게 이 말을 이해 할 수 있었겠나? 그런데 협동조합 공부를 하면서 이 이치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었고 그로 인해 우리 교화단법이 얼마나 위대한가 더욱 실감하게 되었다. 대종사는 당신의 교법으로 조선 사람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일제강점기에서 조선 사람들의 경제, 가정, 정신, 종교를 다 성공시키지 않았던가.

협동조합은 현대의 심각한 사회문제와 경제문제를 해결해 낼 수 있는 정말 훌륭한 법이다. 그런데 협동조합에서 추구하는 바가 이미 우리 교법 안에 다 들어있다. '자리이타의 사농공상'은 협동조합의 큰 줄기이다. 하지만 협동조합은 동포은을 상당부분 실천할 수 있지만 부모은이나 법률은은 일부만 실현할 수 있으며 천지은은 있는지 조차도 모른다. 협동조합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교육이다. 그러나 이 역시도 우리의 훈련법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새로운 경제의 대안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동조합은 세계 경제의 위기 속에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대종사께서 말한 '광대무량한 낙원으로의 인도'가 상상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현실 적인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우리는 협동조합을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하는 것을 협동조합이라고 오해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 협동조합을 운영하고 실천하는 정신과 법은 바로 우리 교법요 교화단법이다. 이를 통해 천지에 보은하고, 사람이 살아나서 무자력자를 보호하고 사회에 자리이타의 사농공상을 구축해 대동화합의 윤리를 실현하는, 대종사께서 말씀한 상상하지 못 할 이상세계를 건설하는 것이 우리가 하려는 일이다.

▲ 백영환 교무/구이교당
온틀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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